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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역발상이 필요하다

기사입력 | 2019-05-08 12:08

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미래엔 노동 量보다 質이 문제
왜곡된 노동시장 바로잡아야
인구위기, 기술혁신 기회 돼야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한국의 미래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출산율은 이미 1.0 이하로 떨어져 세계 최저를 기록하고 있고, 인구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30년에는 인구 중 65세 이상의 연령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4분의 1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절대적 생산인구가 감소할 뿐 아니라 생산인구당 사회경제적 부담은 가중돼 미래의 성장동력을 제약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출산율을 제고하기 위해 각 부처에 관련 위원회를 만들고 2006년 이후 지금까지 무려 153조 원이라는 엄청난 재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출산율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감소하고 있어 난감한 형편이다. 생산인구의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는 대부분의 선진국이 직면한 문제지만 한국은 그 속도가 훨씬 빨라서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과감한 역발상과 창의적인 접근이 시급한 시점이다.

저출산이 미래 한국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가설이 정확한 것인지부터 검토해야 한다. 만일 10∼20년 후에 오히려 저출산을 장려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로봇·인공지능(AI) 등의 발달로 많은 산업과 서비스 부문에서 지금보다 적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아마존의 경우 물품 관리 창고는 이미 로봇에 의존하고 있고, 미국의 주요 도시들에선 음식이나 상품 배달도 로봇이 하고 있다. 자율주행이 시행되면 택시나 우버 기사도 과거의 직업이 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1990년 이후 로봇 1대가 평균 6.2명의 노동자를 대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요한 것은 노동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생산인구를 늘리는 것보다 기술혁신, 생산성의 제고, 새로운 노사관계의 확립 등으로 고령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을 확보하느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당장 시급한 것은 왜곡돼 있는 노동시장을 바로잡고, 향후 노동시장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해 선도적으로 대응하는 데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중소기업에선 일손이 부족하다는 기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출산율을 높이려고 연 10조 원이 넘는 엄청난 재원을 쏟아붓는 데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면, 차라리 이를 청년들 취업을 위한 재훈련이나 중소기업 지원에 사용하는 것이 낫다. 또, 여성인력도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한국의 여성 노동 고용률은 5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9위에 머물렀다. 아직도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도 정확하게 읽고 선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로봇이나 AI의 활성화로 생겨나는 신생 직업이나 이들이 대체할 수 없는 분야를 파악해 이에 필요한 인력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육성해야 한다. 1970∼1980년대에는 기계·전자공학을 중점적으로 육성해 한국이 제조업과 정보기술(IT) 강국이 되는 데 일조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컴퓨터공학은 경시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빅데이터,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소프트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데는 뒤처졌던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더 나아가 로봇이나 AI의 사용이 대세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만큼 이에 필요한 정책적 방안이나 규제(로봇 세금), 더 나아가 이들이 가져올 수 있는 윤리적 문제 등에 (군사 등 특정 분야에의 사용 제한) 대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1960∼1970년대에는 인구과잉이 산업화를 제약할 것을 염려해 산아제한 정책을 폈다. 당시로는 적절한 정책이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이를 고수하다 오히려 저출산이라는 정반대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좀 더 정확한 분석과 예측을 통해 적절한 시점에 정책을 전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출산장려정책은 후일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도 모른다. 지금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1970년대 구호가 그리울지 모르지만 20년 후에는 저출산에 고마워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생산인구의 감소로 사회경제적 위기에 처했던 경우가 지금이 처음은 아니다. 14세기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가 3분의 1이나 급감하는 바람에 현재의 인구절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위기에 직면했었다. 농업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손쉽게 노동의 양을 늘릴 수도 없었지만, 새로운 농업기술의 발견과 이로 인한 생산성 향상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이때 이룩한 기술혁신이 산업자본주의의 토대가 됐다는 연구도 있다. 유럽의 역사적 경험은 저출산·고령화 해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출산율 제고로 생산인구를 늘리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급변하는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의 상황에 맞춰 인구학적 위기를 기술 혁신과 노동의 질 향상 기회로 만드는 게 정답이다.

한국이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저출산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생아실 모습. 김낙중 기자 sa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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