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차인표 감독은 작은 영화를 만들며 젊은 영화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 ‘옹알스’로 전주국제영화제 초청받은 차인표 감독
감독떠나며 엉겁결에 맡은 다큐
혈액암 걸린 멤버위해 제작결심
매년 국내서 제작되는 영화 중
극장에 개봉하는 것은 90편뿐
그 안에 포함될 수 있는건 행운
옹알스는 주류서 밀려난 사람들
상업영화 안들어오는 나와 비슷
“연예인이 아닌 영화인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차인표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 연출작인 다큐멘터리 ‘옹알스’가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것에 대해 이같이 소감을 전했다. 20회 전주영화제 코리아시네마스케이프 부문에서 상영된 이 다큐는 논버벌 코미디팀 옹알스 멤버들의 삶과 도전을 다뤘다. 지난 12년간 21개국 46개 도시에서 공연한 옹알스가 영국 웨스트엔드 소호극장, 서울 예술의전당에 이어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서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다큐는 이달 말 개봉 예정이다.
차 감독은 지난 3일 전주시 한 호텔에서 문화일보와 만나 다큐 제작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매년 국내에서 1200여 편의 장편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중 90편 정도가 극장 개봉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가 만든 영화가 90편 안에 들게 된 건 행운이지만 나머지 1110편을 만든 영화인들께 죄송한 마음도 든다”고 밝혔다.
그가 이 다큐 연출을 맡게 된 건 우연이었다. 지난 2017년 영화제작사 TKC픽쳐스를 설립한 그는 2009년 봉사활동을 하며 알게 된 옹알스의 사연을 다큐로 제작하기 위해 미국인 감독을 선임했지만 그가 촬영이 시작되며 갑자기 개인 사정으로 돌아가자 하는 수 없이 연출자로 나서게 됐다.
“2017년에 옹알스 멤버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축 멤버인 조수원 씨가 혈액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고, 그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10년 넘게 이뤄온 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큐 제작을 결심했어요. 연출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감독이 가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난감했어요. 촬영지인 강원도 콘도에서 밤새 ‘제작이 무산되면 투자배급사에 얼마를 돌려줘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다큐 제작을 시작하며 기뻐하던 조수원 씨 얼굴이 떠올랐고, 배신할 수 없어서 제가 연출자로 나서게 됐어요.”
이미지 크게보기 옹알스 멤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차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그는 옹알스가 걸어온 길이 자신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옹알스 멤버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밀려난 사람들이에요. 공중파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자신들의 무대를 꾸며왔죠. 저도 몇 년 전부터 상업영화 대본이 안 들어오거든요. 작은 영화라도 직접 만들려고, 영화사를 차렸어요. ‘길은 어디에도 있다’가 모토인 옹알스의 모습에 제 모습이 투영된 느낌을 받았어요.”
이 다큐가 그의 연출 데뷔작은 아니다. 2017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영화 ‘50’을 처음 연출했다. 또 자신이 각본을 쓴 단편 ‘샤또 몬테’도 이번 영화제에 초청됐다. 그의 영화 작업에 전규환 감독의 딸인 전혜림 감독이 함께해왔다. ‘50’의 조연출을 맡은 전혜림 감독은 ‘샤또 몬테’로 데뷔했다. 다큐 ‘옹알스’도 공동 연출자로 이름을 올렸다.
“혼자 할 자신이 없어서 전혜림 감독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첫날 제가 촬영한 영상을 보고는 전 감독이 ‘이렇게 하면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을 해서 충격받았어요(웃음). 다섯 가지 버전으로 편집을 했는데 전 감독이 고집이 세서 제가 결정하면 자기가 원하는 버전으로 바꿔놓더라고요. 결국 많은 분들의 조언을 듣고 가장 좋은 버전으로 전주영화제에 오게 됐어요.”
차 감독과 함께 인터뷰에 응한 전 감독은 “나 같은 신인 영화인에게 기회를 주신 선배님께 감사드린다”며 “버릇없이 구는 걸 다 받아주며 공동 연출자로 존중해줬다. 선배님의 연륜이 녹아 영화가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롤모델이라는 차 감독은 “앞으로도 연출을 계속할 거냐”는 질문에 “안 한다”고 잘라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평생 영화를 하고 싶어서 연출을 시작했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인터뷰 기사를 보고 저도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젊은 영화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더 중요한 제 역할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작은 영화를 만들며 감독이 구해지지 않으면 또 제가 해야죠(웃음).”
전주=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kind=link}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