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인물

시간 멈춘 경계의 땅… ‘금단의 길’ 끝을 밟다

박경일 기자 | 2019-05-01 14:11

지난달 27일 강원 고성의 ‘DMZ 평화의 길’을 찾은 탐방객들이 남방한계선 너머 철책선을 따라 걷고 있다. 2.7㎞ 도보구간 전체가 철책선을 끼고 간다. 뒤쪽의 능선에 통일전망대와 지난해 12월 개장한 통일전망타워가 보인다. 지난달 27일 강원 고성의 ‘DMZ 평화의 길’을 찾은 탐방객들이 남방한계선 너머 철책선을 따라 걷고 있다. 2.7㎞ 도보구간 전체가 철책선을 끼고 간다. 뒤쪽의 능선에 통일전망대와 지난해 12월 개장한 통일전망타워가 보인다.


강원 고성 DMZ 평화의 길

강원 고성의 최전방 접적 지역. 지금은 D자 형상으로 새로 지어진 날렵한 평화전망대가 있지만, 작년 말까지 1983년 지어진 낡은 2층 건물 통일전망대가 전망대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 국민 2000만 명이 다녀간 곳이지요.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황량한 북녘땅의 모습과 비무장지대(DMZ)는 어쩐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경계의 땅은 무음(無音)과 정물로 이뤄진 ‘진공의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음성을 꺼버린 TV처럼 말입니다. 경계의 땅에서는 팽팽한 긴장과 함께 비릿한 쇳내가 나는 듯했습니다. 철조망 너머의 텅 빈 해안으로 겹겹이 동해의 파도가 밀려왔지만, 멀어서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밀려오는 파도의 흰 띠만 적막한 해변에 선명할 뿐이었습니다. 그 적막의 공간에 ‘DMZ 평화의 길’이 놓였습니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서 비무장지대의 비현실 위로 길이 놓인 것이지요. 한때 그 길은 현기증이 날 만큼 아득히 멀어 보이던 길이었습니다. 아무도 걷는 이가 없었던, 그래서 그것을 과연 ‘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었던, 그런 길이었습니다.

이제 그 길 위로 한 사람이 지나고, 그 뒤를 다른 사람이 지나며 길은 또렷해질 것입니다. 길은 사람이 흘러가는 자취이기도 하고, 땅이 사람과 함께 흘러가는 모양이기도 합니다. 길은 통로로, 순환으로도 읽힙니다만, 때로 물리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지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 길의 경관이 예사롭지 않은 것도, 그 길을 걷는 내내 가슴이 묵직해지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4·27 남북정상회담 꼭 1년 만이었던 지난달 27일 처음 일반에 공개된 이 길을 걸으면서 경계와 긴장의 땅에 놓인 길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마침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그쳐서 미세먼지 하나 없이 선명했던 날이었습니다.

# 봄눈 내린 날에 고성에 가다

‘경계의 땅’은 가장 멀다. 남북 화해의 훈풍에 힘입어 육로를 따라 금강산 관광이 이뤄졌을 때도, 가족상봉을 위해 이산가족들이 오갔을 때도, 경계는 늘 삼엄했다. 갈등과 반목의 시기에도, 그리고 화해의 시기에도 접적 지역의 대기에는 늘 화약 냄새의 긴장이 묻어났다. 비무장지대(DMZ)는 형식적으로는 충돌을 막기 위해 경계에다 지정한 ‘비무장’의 공간. 하지만 실제로는 팽팽한 갈등과 긴장, 그리고 대립으로 위태로웠던 공간이다.

비무장지대에 걷기 길을 놓기로 한 건, 남북 정상이 4·27 판문점 선언에서 ‘DMZ를 평화지대로 만들자’고 합의한 데 따른 것이었다. 남북합의 후속대책으로 강원 고성과 철원, 경기 파주의 DMZ 공간에 걷기 코스가 기획됐다. 당초 계획은 이들 지역에 3개의 DMZ 도보 코스를 조성해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한꺼번에 여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엔사와의 협의가 늦어지고 안전대책 미흡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서 강원 고성 DMZ의 걷기 코스만 ‘DMZ 평화의 길’이란 이름으로 먼저 공개됐다.

‘DMZ 평화의 길’의 출발 지점은 강원 고성의 통일전망대다. 통일전망대로 가는 길. 이른 아침 속초를 지나는데 소복하게 눈이 덮인 설악의 주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5월이 코앞인데 눈이라니…. 청초호 너머로 보이는 설악의 봄 설경이 장관이었다. ‘DMZ 평화의 길’의 도보코스를 다 걷고 나서 당도한 717 최전방관측소(OP)에서 바라본 금강산 채하봉도 눈에 덮인 모습이었다. ‘DMZ 평화의 길’이 열리는 첫날. 눈은 남북화해를 상징하는 서설(瑞雪)이었을까.


# 66년 만에 잠긴 문을 열다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통일전망대 앞에는 이날 처음 민간에 개방하는 ‘DMZ 평화의 길’ 탐방에 참가할 A코스 참가자 20명이 모였다. 이날 첫 DMZ 개방의 감격을 경험하게 된 참가자들은 자그마치 32대 1의 경쟁률 추첨을 통과했다.

고성 ‘DMZ 평화의 길’은 A코스와 B코스 두 개로 나뉜다. A코스는 도보 이동과 차량 이동을 결합했다. 통일전망대에서 해안 철책을 따라 이어지는 2.7㎞의 도보 코스를 걸은 뒤 차량을 타고 717 OP를 들렀다가 통일전망대로 되돌아온다. 반면 B코스는 도보 없이 차량으로만 이동해 통일전망대에서 717 OP만 들렀다 나온다. 두 코스 모두 오전, 오후로 나눠 하루 두 차례씩 투어를 진행한다. A코스는 20명씩 두 번이니 하루 40명이, B 코스는 80명씩 두 번이니 160명이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참가자는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아 추첨을 통해 가려지는데, 철책선 걷기가 포함된 A 코스가 훨씬 인기가 많아 경쟁률이 20대 1을 훌쩍 넘는다. 차량으로 OP만 다녀오는 B코스는 한결 경쟁이 덜해 주말에도 경쟁률이 2대 1정도이고 평일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오전 10시 30분. 해안초소 쪽으로 연결된 철문이 열렸다. 쇠장식으로 치장된 철문은 오랜 분단의 벽이란 상징과도, 금단의 경계로 들어간다는 비장감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철문을 잠그고 있던 빗장과 열쇠도 여느 민가의 대문과 다를 게 없다.

아무렇지도 않게 빗장이 풀렸고 무심하게 문이 열렸다. 군부대에서 나눠 준 노란 재킷을 입은 탐방객들이 거침없이 문을 통과했다. 문은, 너무나도 쉽게 열렸다. 자그마치 66년 동안 굳게 잠겨 있던 문이지만, 막상 그 문을 연다는 건 이렇듯 무심하고 싱거운 일인 것일까.

# 초병들이 다져놓은 길 위에 서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곧바로 해안가로 내려서는 가파른 철계단이다. 철계단 위에서는 남쪽으로 해안 비경이 펼쳐진다. 직벽을 이룬 언덕 아래에 꼭꼭 숨어있는 해안이다. 북쪽만 생각했는데, 불쑥 남쪽의 경관이 펼쳐져서 뜻밖이다. 철계단을 다 내려가면 해안 풍경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나무로 짠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DMZ 구간을 걸을 때는 군인과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야 한다. 주변이 온통 지뢰지대라 코스를 벗어나면 절대로 안 된다. 사진도 지정된 포토존에서만 찍을 수 있다. 도보구간에는 모두 3곳의 포토존을 정해놓았는데 첫 번째 포토존이 바로 여기 전망대다. 접적의 비장미 없이 오로지 경관만으로도 감탄이 나오는 명소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바다 쪽으로 두 겹의 철책을 끼고 길이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경계를 서는 초병들이 다져놓은 길이다. 길섶에는 민들레와 제비꽃이 환하게 피어 있고, 붉은색 ‘지뢰’ 표지의 경계 너머로 나무의 신록이 싱그럽다.

초록의 초지 위를 나비들이 날아다녔고, 철책 너머로 푸른 바다의 파도 소리가 운치있었다. 철책과 지뢰표지만 지운다면 이보다 더 낭만적인 해안 풍경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길옆의 관목 숲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고라니가 인기척에 생고무처럼 튀어 내달렸다. 또 한 마리의 고라니는 철길 위에 낯선듯 서서 이쪽을 오래 바라보았다.

탐방로 옆으로는 터널을 나온 철길이 줄곧 따라온다. 동해북부선 철도다. 동해북부선은 일제강점기이던 1937년 자원수탈을 위해 강원 양양역에서 북한의 안변역까지 연결했던 철로 노선.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는 동안 쓸모를 잃고 녹슬어 있던 철로는 남북화해의 시기에 복원됐다. 하지만 2007년 5월 17일 제진역에서 북한의 감호역까지 딱 한 번 열차 시험운행이 이뤄진 게 전부다. 북한 측의 비협조로 철도운행은 지금까지 중단된 상태다.

언제 다시 푸른 바다를 끼고 이어진 철로를 따라 남북을 오가는 열차가 다닐 수 있을까. 동해북부선 열차를 타고 금강산 청년역과 나진역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될 날은 과연 올까.


# 소원 나무에 통일의 소원을 걸다

길은 철책을 따라 이어진다. 예전에는 경계철책에다 자갈 등을 꽂아둔 뒤 침투가 있었는지를 체크했다는데, 지금의 철책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갖가지 감시장비와 첨단 장치들이 장착된 이른바 ‘스마트 철책’이다.

철책을 따라 걷기 시작한 지 20분쯤이나 됐을까. 경고문이 적힌 팻말이 서 있다. 팻말에는 적힌 문구가 이렇다. ‘귀하는 지금 유엔사 정전위원회에서 관할하는 비무장지대로 진입(접근)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팻말이 서 있는 자리가 군사분계선(MDL) 남쪽 2㎞ 지점에 그어진 남방한계선이다. 팻말 외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지만, 본래 유엔사가 관할하는 DMZ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북 대립의 시기에 남과 북 모두 한계선 철책을 군사분계선 가까이로 옮겼다. 우리는 남방한계선 철책을 끌고 올라갔고, 북한은 북방한계선 철책을 밀고 내려왔다. 이로써 4㎞에 달하던 DMZ의 폭은 절반쯤으로 줄어들었다.

남방한계선 부근에는 ‘소원 나무’가 설치돼 있다. ‘나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반전된 한반도의 모습을 이어놓은 구조물이다. 탐방 참가자들은 이 구조물에 소원을 적은 플라스틱 카드를 건다. 하루 전날 이곳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맨 처음 걸어둔 소원 카드에는 ‘평화로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탐방객들은 여기서 저마다 통일을 기원하는 소원 하나씩을 적어 걸었다.

철책을 따라 걷는 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길옆에 방치된 부서진 소형 포클레인이었다. 2003년 작업 중 지뢰를 밟아 부서진 포클레인을, 병사들의 경각심 고취를 위해 치우지 않고 그 자리에 뒀다는 설명이다. 그제야 길섶에 붙어 있는 지뢰표지판이 실감이 났다. 탐방객을 인솔하던 권성준 해설사는 “남북이 함께 6만 개를 제거했지만, 아직도 DMZ에는 자그마치 194만 개의 지뢰가 묻혀 있다”고 탄식처럼 말했다.

# 금강산이 빚은 가장 아름다운 경계

땅이 바다 쪽으로 밀고 나가서 마치 섬처럼 보이는 송도 부근에는 조망을 위해 지대를 높여 나무 덱을 지은 두 번째 포토존이 있다. 철책 너머로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다. 여기서 남쪽 구릉 위로 새로 지은 통일전망타워가 보인다. 통일전망타워에 올라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경계 지역이 바로 여기다. 우리는 저기 전망타워에서 이곳 철책선까지, 이 만큼 더 가까이 온 건 아닐까. 하지만 속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송도를 지나면 이내 도보구간의 종착 지점인 금강통문이다. 금강통문은 추진철책선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다. 동해북부선 철도와 도로는 통문 너머 북쪽으로 이어지는데 길은 철조망에 막혀 더 들어갈 수 없다.

휴전선 155마일의 최북단. 통문 앞에서는 저절로 비장해진다. 여기서 서울까지 166㎞, 평양까지 230㎞, 백두산까지 379㎞, 마라도까지 637㎞의 거리. 서울에서 평양까지, 혹은 마라도에서 백두산까지 우리는 이 길로 갈 수 있을까. 긴장과 대립을 넘어, 갈등과 반목을 넘어 우리는, 끝내 평화로 갈 수 있을까.

탐방객들은 금강통문에서 소형버스로 갈아타고 ‘금강산전망대’라고도 불리는 717 OP에 올랐다. 717 OP는 강원 고성 민북 지역의 남한 땅 최북단의 전방 관측소. 북한 땅과 가깝다는 감회보다는 숨이 턱 막히는 자연경관에 먼저 감동하게 되는 곳이다. OP의 야외전망대에서 바라다보이는 구선봉과 해금강을 비롯해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든 감호 일대의 경관은 그야말로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눈으로 덮인 금강산 제2봉인 채하봉의 긴 능선이 장쾌했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금강산 낙타봉과 가마봉, 말무리 반도가 바다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하고 있는 경계의 공간이 어쩌자고 이리도 아름다운 것일까. 이런 풍경 앞에서 어떻게 서로 싸울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분단의 공간에 겹쳐진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그저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성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DMZ 평화의 길’ 코스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지는 곳이 고성 통일전망대 북쪽 2㎞ 지점에 있는 717 최전방관측소(OP)다. 여기에 오르면 금강산 채하봉과 함께 선녀와 나무꾼 전설이 깃든 호수 감호와 해금강의 진청색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원 고성의 ‘DMZ 평화의 길’의 2.7㎞ 도보구간은 줄곧 바닷가에 설치된 이중 철책을 따라간다. 사진 위는 탐방객들이 파도 소리를 들으며 철책선을 따라 걷는 모습. 아래 사진 왼쪽은 작업 도중 지뢰를 밟아서 부서진 포클레인. 병사들의 지뢰지대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현장을 그대로 보존했다. 아래 오른쪽은 도보 코스의 종착 지점인 추진철책 통문 앞에 설치된 ‘전선의 최북단’ 기념비.

관련기사

많이 본 기사 Top5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카카오톡

핫클릭 ✓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