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봄 멸치잡이로 이름난 부산 대변항에서 어부들이 그물에 걸린 멸치를 털고 있다. 지금 대변항에서는 생물 그대로 회로 먹는 큰 멸치인 ‘대멸’이 난다.

봄맞이 제철 음식 여행

봄 여행의 주제는 ‘꽃’이지만, ‘맛’ 따라가는 여정도 훌륭하다. 꽃은 봄이 더 깊어지면 지고 말지만, 맛은 점점 더 깊어지는 법이다. 봄철에 유명한 제철 별미 여행지가 있다. 인천의 강화도는 밴댕이, 서해안은 주꾸미가 제철이다. 익산이나 부여, 강경은 우여회가 나고, 남해와 울산에서는 봄 멸치가 제철이다. 봄 도다리는 봄에만 맛볼 수 있는 거제나 통영의 명물이다. 아, 여수의 서대회도 빼놓을 수 없겠다.

◇싱싱한 밴댕이 맛…인천 구월동 = 반투명의 속살을 가진 밴댕이는 그물에 걸린 순간 파르르 떨다가 이내 죽어버리고 만다. 어찌나 목숨이 짧은지 밴댕이를 잡는 어부조차 살아 있는 밴댕이를 보기 어려울 정도. 밴댕이를 산지에서 맛봐야 하는 이유다. 요즘에야 잡자마자 급랭한 밴댕이를 사철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지만, 꽝꽝 얼렸다 녹인 맛과 제철에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맛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밴댕이가 제맛을 내는 건 산란기인 4월부터 7월까지. 산란기쯤에 잡은 밴댕이는 살이 탱탱하게 올라 있다.

봄철 밴댕이 어장은 강화 교동도와 석모도 사이 앞바다에 형성된다. 이곳에서 잡아낸 밴댕이는 대부분 인천 구월동으로 직행한다. 인천 구월동 종합문화예술회관 맞은편에 ‘밴댕이 골목’이 있는데 골목 양쪽에 밴댕이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밴댕이 골목이란 이름을 얻었다.

밴댕이 요리는 간단하다. 회와 무침, 구이가 전부다. 여기다가 주꾸미, 물텀벙, 한치, 준치 등의 해산물 메뉴를 함께 내놓는다. 밴댕이 철이 특히 반가운 건 맛도 맛이지만, 저렴한 가격 때문이기도 하다. 회와 무침을 양껏 주문한다 해도 여느 회의 절반 가격이다.

◇부드러운 봄 멸치 맛…부산 대변항 = 부산 기장의 대변항은 남해 미조항과 함께 봄 멸치의 대표적인 산지로 꼽히는 곳. 3월부터 5월 사이에 대변항에서는 큰 멸치, 이른바 ‘대멸’이 난다. 대멸은 잔멸치처럼 말리지 않고 생물 그대로 회로 먹거나 쌈을 싸먹는다. 자작하게 찌개로 끓여내도 좋다. 갓 잡아낸 비린 맛이 전혀 없는 대멸은 오로지 봄철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대변항에서 생산되는 일명 대멸은 국내 생산량의 65∼70%를 차지할 정도로 수확량이 많다. 봄 멸치떼가 나타나면 대변항의 물양장에는 그물을 터는 손길이 바쁘고, 항구 앞에 늘어선 족히 60∼70개는 되는 멸치 횟집들은 싱싱한 멸치회와 무침을 찾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기장 대변항에서는 오는 25일부터 28일까지 기장 멸치축제가 열린다. 멸치를 비롯한 수산물 경매가 열리고 활어 맨손 잡기, 멸치액젓으로 김치 담그기, 멸치 낚기, 멸치 털기 등 다양한 체험이 펼쳐지는데, 축제 기간 대변항 방파제 어디고 자리만 펴면 즉석 멸치식당으로 둔갑한다.

◇올해는 주꾸미가 푸짐해질까…충남 서천 마량 = 봄맛을 대표하는 대중적인 음식 주꾸미는 최근 10년 사이에 어획량이 절반까지 떨어지면서 ‘귀하신 몸’이 됐다. 어획량이 떨어진 만큼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러자 정부가 지난해 2월 주꾸미를 ‘회복대상 종’에 포함시키고 5월부터 8월까지 주꾸미 어획을 금지했다. 이런 조치 덕인지 주꾸미 어획량은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에는 예년보다 더 푸짐하게 봄 주꾸미 맛을 볼 수 있을지 기대된다. 주꾸미 산지 중에서 가장 이름난 곳은 서천의 마량 포구. 수온이 올라가는 3∼4월에 포란기를 맞은 주꾸미들이 먹이인 새우를 찾아 서해 연안으로 몰려드는데, 이때 잡히는 주꾸미는 육질이 쫄깃하고 씹을수록 맛이 우러난다. 현지 어민들은 산 채로 초장에 찍어 먹는 주꾸미의 맛을 최고로 치지만, 외지 사람들은 주로 끓는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다. 미나리, 쑥갓 등 갖은 야채를 넣고 들깻가루와 얼큰한 양념에 버무려 볶아내는 전골도 훌륭하다.

마량 포구 앞에는 주꾸미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마량 포구는 휘어진 칼처럼 바다로 툭 튀어나와 있어 낙조와 일출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충무김밥부터 도다리쑥국까지…경남 통영 = 통영은 다양한 맛으로 이름난 곳이다. 중앙동·항남동의 강구안 골목과 시장통에는 오래된 식당들이 수십 년 넘게 옛 맛을 지키며 살아 있다. 통영의 대표 먹거리라면 단연 충무김밥. 충무김밥이란 게 펼쳐놓고 보면 뭐 별 게 없지만 희한하게도 입맛을 끈다. 통영항 인근에 충무김밥을 내건 식당이 무수한데, 조금씩 맛이 다 다르다.

통영의 새벽시장으로 알려진 서호시장은 연륜 있는 음식이 특히 많다. 시래기를 넣어 끓인 장어탕인 시락국 집이며, 짜장면과 우동을 섞은 분식집 국수 우짜, 말린 고구마로 끓인 빼떼기죽이 대표적이다.

이즈음 통영의 대표 메뉴라면 단연 봄철에만 나오는 도다리쑥국이다. 아직 살이 물러 회로 먹기 적당하지 않은 어린 도다리에다 쑥을 넣고 국을 끓여 먹는다. 심심한 듯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통영의 대표 주전부리인 꿀빵은 디저트로 제격이다. 꿀빵을 통영시 명물로 만든 오미사꿀빵은 통영에만 본점과 2호점이 있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왼쪽부터 인천 구월동의 밴댕이회. 서천 마량 포구의 주꾸미 데침. 통영의 도다리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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