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제조업체 ‘포모스트’
3개월치 2억여원 예납않자
한전,내부약관 내세워 단전
법원선 동일 약관 무효결정

법조계“회생제도 근간 훼손
기업, 파산으로 내모는 행위”

한국전력공사가 지난 20일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한 중소기업에 이례적으로 단전 조치를 내린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한전 측은 단전 사유로 내부 약관을 들고 있지만, 해당 약관에 대해 “무효”를 선언한 법원 결정에 정면으로 위배돼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회생전문가들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기업회생의 취지를 살려 하루빨리 해당 약관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회생법원 법인회생11부(부장 김상규)는 지난달 21일 중소 섬유제조업체 포모스트에 대해 회생개시 결정을 내렸다. 한전은 기본공급약관 제79조를 근거로 포모스트에 ‘3개월치 전기료에 대한 보증금(2억여 원)을 예납하라’고 요구했다. 포모스트 측은 “지출을 위해서는 회생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며 불응했다. 이에 한전이 전기공급을 끊어버린 것이다. 회생법원 안팎에서는 “한전이 약관을 근거로 채무기업에 ‘단전 협박’을 가하는 사례는 많지만, 실제 단전을 한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강행조치로 보인다”며 “기업회생제도의 근간을 훼손하는, 독점 공기업의 갑질”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회생법원 판사들도 기껏 기업을 살리겠다는 회생결정을 내렸는데, 기업들이 매번 독점 공기업들로부터 저런 요구를 받으니 난감해한다”면서 “회생법원이 보증금 1개월치만 납부하는 방향으로 한전 측과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산업부에서 조속히 해당 약관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서울중앙지법은 2016년 한전 약관에 대해 “회생절차에 있는 채무자에 대해 계속적 급부를 보장하고 있는 채무자회생법 제122조 제1항의 규정에 정면으로 반할 뿐 아니라,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으로 공정성을 잃은 것이므로 무효”라고 결정한 바 있다. 한 회생 전문 법조인도 “대기업들도 회생절차에 들어가는 순간 독점 공기업의 보증금 예납 요구에 시달린다”면서 “보증금 예납 압박은 회생 중인 기업을 파산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관기 회생전문변호사는 “기업들도 회생절차 중에는 영업이익이 나오는 대로 가장 먼저 전기세 등을 납부하기 때문에 한전은 담보를 잡을 필요가 없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한전 측은 “약관 무효 결정은 개별 법원이 과거에 내린 것”이라면서 “현재 새로운 법원에서 판단을 받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사이 기업은 망한다”면서 “정부가 약관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