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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的 지배·피지배의 극단… 초현실적 영상미 압권

기사입력 | 2019-03-19 11:17


■ ‘안티포르노’

천재 소설가이자 화가인 교코(도미테 아미)는 자신의 펜트하우스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개인 비서(쓰쓰이 마리코)와 함께 방문객들을 맞는다. 방문객은 모두 여성으로 교코의 인터뷰를 진행할 유명 잡지의 기자들과 포토그래퍼들이다. 교코는 방문객들 앞에서 비서의 목에 체인을 채우고 짖으라고 명령하거나, 레즈비언 포토그래퍼 커플과 강제로 스리섬 섹스를 시키며 무참히 학대한다. 벌거벗은 비서가 그들에게 둘러싸여 관계를 갖는 동안 교코는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영화 중반부에 드러나는 반전은 이것이 영화 세트장이라는 사실이고, 교코는 신인 여배우일 뿐이다. 그에게 학대당하던 비서(역을 맡은 배우)는 사실상 세트장 위에 군림하는 스타 여배우다. 그의 명령에 따라 감독과 스태프가 움직인다. 현실의 교코는 그에게 ‘개’처럼 복종하는 인물이며 스태프 모두가 그를 무시한다.

소노 시온의 2017년 작 ‘안티포르노’(사진)는 교코가 연기하는 영화 속 캐릭터 ‘작가’와 현실에서의 ‘배우’를 통해 지배와 피지배의 극단을 그린다.

이 영화는 일본 전통 영화사 니카쓰 스튜디오가 1970년대에 들어 TV의 보급으로 인한 불경기를 극복하고자 고안한 극장용 성인 영화 장르 ‘로망 포르노’의 리부트 프로젝트 중 하나다. 로망 포르노 리부트는 어젠다가 있다. 1970년대 황금기 로망 포르노의 전통을 기리되, 남성이 아닌 여성 중심의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과거 로망 포르노 영화는 대중의 인기를 모았으나 여성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강간이 모티프로 쓰였고, 여성은 남성의 가학적인 폭력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으로 묘사되곤 했다. 이번 리부트로 여성을 위한 로망 포르노를 제작하겠다고 한 것은 장르의 ‘부정적인 전통’을 전복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안티포르노’가 내세우는 ‘교코’라는 여성은 로망 포르노 리부트가 의도하는 여성프로젝트의 아이콘, 다시 말해 과거 로망 포르노에서 희생당한 수많은 여성 캐릭터에 대한 참회로도 읽어 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교코는 단연 진일보한 캐릭터다. 가령 영화 속의 교코는 방문객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자유롭게 춤을 추며 독백을 하는데 그가 역설하는 내용은 주로 여성 시선에서의 관습에 대한 비판이다. 벽이 없이 오픈돼 있는 화장실에서 그는 왜 남자만 서서 볼일을 봐야 하는 것인지 반문하거나 작가라는 호칭에 ‘여류’를 갖다 붙이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현실의 교코는 반대다. 그는 늘 감독에게 부족한 연기력으로 언어와 육체적 폭력에 시달린다. 그의 약점은 섹스신을 연기하는 것인데 이는 그가 어린 시절 포르노 영화에 출연했다가 생긴 섹슈얼 트라우마에 기인한다. 교코는 트라우마에 집착하고, 이를 극대화해 자신의 성적 자아에 반영하려 한다. 배우로 인정받기 위해 정서적 상흔을 밑천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영화는 교코의 갈등과 혼란에 대한 해소법을 제시하지 않은 채 텅 빈 울림만 남겨두고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페미니스트의 시선을 가진 여성 아티스트와 이의 대칭점에 있는 여성 혹은 전통적 여성상과의 대조를 통해 주제를 전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리부트 프로젝트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교코는 분열적인 태도로 비서를 학대하고 복종하게 한다. 눈물과 웃음을 반복하는 그의 행동에는 어떤 인과도 부재하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설득력이 있지만, 언행은 모순 가득한 히스테리에 그친다.

니카쓰 출신의 시온 감독은 극영화의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난 파격적이고 문제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안티포르노’도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서사보다는 이미지로, 인물보다는 색채에 방점을 둔 초현실적 영상에 가까운 영화다. 교코의 오색찬란한 펜트하우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감 등은 매체의 경계를 넘어 복합적인 예술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페미니즘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슈를 건드리고자 한 영화의 외피가 초현실주의를 표방한다는 영화의 모순에도 영화의 도(度)를 넘는 예술적 시도는 감탄을 멈추지 않게 한다.

영화평론가

김효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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