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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질서 없는 한… ‘네트워크 유토피아’는 허상

최현미 기자 | 2019-02-15 10:20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 광장에 푸블리코 궁전 만지아 탑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는 수평적 네트워크인 광장과 수직적 위계인 타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1세기북스 제공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 광장에 푸블리코 궁전 만지아 탑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는 수평적 네트워크인 광장과 수직적 위계인 타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1세기북스 제공


- 광장과 타워 /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 21세기북스

수평적 네트워크 상징 ‘광장’
수직적 위계 가리키는 ‘타워’
인류역사 만들어온 양대 구조

역사속의 지식 네트워크 추적
전체주의로 끝난 현실 보여줘
現시대 ‘혁명의 미래’도 의문

긍정적 미래 대안 도출하려면
광장과 타워 사이서 답 찾아야


‘시빌라이제이션’을 통해 서양문명이 동양문명을 앞서 나간 ‘대분기’를 추적하고 ‘위대한 퇴보’에선 서구의 퇴락을 명쾌하게 분석한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가 이번에 ‘네트워크’의 역사를 쫓는다. ‘네트워크’라면 더 이상 쫓아가 분석할 것이 없어 보인다. 현대가 컴퓨터, 인터넷에 기반한 네트워크 시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네트워크는 일상이자 권력이며 초연결은 현대인의 필수감각이다. 연결되지 않으면 기다리는 것은 사회적 죽음뿐이다. 즉각 반응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연결된 것은 유사 이래 처음이라는 에릭 슈밋의 말도 흔한 상식이다.

하지만 퍼거슨은 상식의 빈틈을 파고든다. 사람들은 흔히 네트워크를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 낸 새로운 현실이라고 여기지만 실은 인류 역사에서 네트워크는 언제나 있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책 제목대로 인류 역사는 ‘광장’과 ‘타워’가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하고 공존하며 흘러왔다고 했다. ‘광장’은 옆으로 넓게 펴진 수평적 구조, 바로 네트워크이며, 타워는 하늘로 치솟은 권력의 수직적 구조, 즉 위계(Hierarchy)다. 네트워크와 위계의 긴장과 교차, 이것이 그가 해석한 인류 역사다.

대분기든 서구의 몰락이든, 곁가지를 치고 한 주제에 대해 논리정연한 통사를 선명히 드러내는 데 능한 퍼거슨은 이번에도 네트워크와 위계의 역사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가 네트워크에 꽂힌 이유는 꽤 ‘역사학자’스럽다. 역사상 최고 네트워크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그 답을 이전 네트워크 시대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생체 메커니즘과 생태계 자체가 네트워크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출발한다. 하지만 농경사회에 들어서면서 위계 시스템이 더 탄력을 받는다. 지도자에게 판단을 위임하고 구성원들은 자기 농사에 전념하는 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 뒤 그리스 민주정이나 지식인 연대처럼 작은 규모의 네트워크가 존재하긴 했지만 오랫동안 위계가 압승을 거둔다. 게다가 역사는 언제나 왕, 국가 같은 위계의 공식 기록에 의존하다 보니 그나마 있는 네트워크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런 전체 흐름 속 인류는 두 번의 강력한 네트워크 혁명을 맞는다. 첫 번째 혁명은 15세기 말 구텐베르크의 활자에서 시작돼 18세기 말까지 지속됐고, 두 번째 혁명은 우리 시대로 1970년대에 시작됐다. 퍼거슨은 첫 번째 혁명의 설명에 공을 들인다. 1717년 영국에서 인도주의적 우애를 위해 결사돼,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프리메이슨’, 1776년 독일 잉골슈타트 법대 교수가 계몽과 이성의 광명을 내걸고 결성해 미국까지 건너간 ‘일루미나티’ 결사대, 장 자크 루소·볼테르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 계몽주의 지식 네트워크를 추적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문제는 이 첫 네트워크 혁명의 결말이다. 퍼거슨은 인쇄술, 계몽주의, 과학혁명이 결합해 이뤄진 첫 네트워크 혁명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 새 세상을 열었지만 ‘위계’가 네트워크를 자신의 전략적 수단으로 포섭하면서 파시즘과 전체주의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네트워크가 언제나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그는 두 번째 네트워크 혁명기에 있는 우리의 미래도 의심한다. 마크 저커버그는 2017년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모든 이가 인생의 목적을 가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평등을 재정의하고 전 세계 공동체를 구축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 페이스북, 인공지능과 비트코인까지 살핀 저자는 저커버그의 유토피아 비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네트워크 유토피아를 말하지만 정작 그야말로 슈퍼스타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을 보여준다고 했다. 한편에선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대신할 경우를 대비해 기본소득을 제시하지만 인류 대다수가 불평 없이 기본소득을 받으며 여가활동에만 몰두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고 했다. 또 그 대신 얻게 되는 최고 수준의 어린이집, 직장에 매이지 않는 의료보험, 지속적인 교육 같은 장치도 어쩌면 올더스 헉슬리가 상상한 전체주의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봤다. 권력자들이 네트워크 인식 영역을 자기 멋대로 사용할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퍼거슨은 네트워크 혁명은 자유롭고 공평한 유토피아보다는 이전 마지막 네트워크 시대에 나타난 혁명 같은 폭력과 무정부주의적 혼돈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하고 공정한 위계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답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탈리아 시에나 광장 피아자 델 캄포에 있는 푸블리코 궁전의 종탑 토레 델 만지아다. 14세기 시에나 공국에선 아홉 명의 공직자가 두 달씩 돌아가며 일하는 동안 각자의 가족에게서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곳에 걸린 프레스코화에는 이들 아홉 명의 손이 밧줄로 연결돼 있다. 공동체 이익의 네트워크에 기반한 위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개념 아래 제안한 구체적 답은 논란과 비판을 불러올 결론이다. 세계 대전 후 빈 회의에서 5대 강국이 모여 질서를 확립하기로 결정했듯이 강대국들이 테러, 범죄, 사이버 파괴 행위,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를 공동 이해로 인식해 또 하나의 5대 강국 체제 같은 것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명성을 의심케 하는 강대국 중심의 퇴행적 결론이다.

그렇다고 그냥 덮어버릴 순 없다. 결론엔 이의를 제기해도 네트워크 시대를 둘러싼 논의와 통찰의 과정은 의미 있다. 유토피아 아니면 디스토피아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현실적 대안을 도출하려는 시도. 수평적 네트워크 사회는 언제나 수직적 위계 구조보다 선하고 아름답다는 전제에 대한 의심도 품어볼 일이다. 결국 위계 없는 네트워크나 네트워크 없는 위계가 아니라 이 광장과 타워 사이에서 끊임없이 현실적 답을 찾으려는, 결국 우리가 가야 할 정해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860쪽, 4만5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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