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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尋牛莊)

기사입력 | 2019-02-12 12:09

박현수 조사팀장

만해 한용운은 한겨울에도 차디찬 냉방에서 지냈다. ‘일제 치하에서 조선 땅덩어리가 감옥인데, 불 땐 방에서 편히 살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생전 그의 별명은 ‘저울추’로 불렸다. 명상에 잠길 때면 냉방에서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어 붙여졌다. 만해와 관련된 일화는 유난히 많다. 3·1운동 준비를 위해 자금이 필요했던 그는 당시 부자로 소문났던 친일파 민영휘를 찾아갔다. 독립운동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권총을 꺼내 위협했다. 민영휘는 겁에 질려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만해는 권총을 민영휘 앞으로 던졌다. 장난감 총이었다.

만해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불교개혁에 앞장선 한국불교계의 선각자이다. 대부분의 민족대표가 일제의 탄압과 회유에 넘어가 변절했으나 서릿발 같은 절개와 지조를 꿋꿋이 지켰다. 항일민족단체였던 신간회 결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3·1운동 주동자로 체포돼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출옥한 후, 전국 각지를 돌며 강연을 통해 청년들의 각성을 촉구해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1926년 근대 한국 시의 기념비적 저작인 ‘님의 침묵’을 발간해 문단에 파문을 던지는 등 작가로도 큰 발자취를 남긴 민족 지성의 표본이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심우장(尋牛莊)은 만해가 말년에 11년간 살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지은 집으로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북향집이다.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 청사와 마주 보게 되는 게 싫어 북향을 선택했다. 이처럼 일제에 저항하는 삶을 일관했던 그는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곳에서 65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이후 외동딸 한영숙이 살았으나, 일본 대사관저가 건너편에 자리 잡자 명륜동으로 이사하고 현재 만해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심우(尋牛)’란 이름은 선종(禪宗)의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문화재청은 12일 심우장을 사적(史蹟)으로 지정 예고했다. 만해 탄신 140주년과 75주기를 맞아 국가 지정 문화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일이다. 마침 곧 3·1운동 10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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