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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법 만든 술탄… 정작 그는 ‘술고래’

기사입력 | 2019-02-11 14:22

술자리에서 담배를 찾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요즘은 실내에서 흡연을 거의 안 하지만 예전에 고깃집은 고기 연기와 자욱한 담배 연기가 공존했다. 이제는 담배를 흡연구역에서만 피울 수 있고 흡연구역 이외의 곳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릴 경우 과태료를 낸다. 하지만 예전 오스만제국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사형시키던 시대도 있었다.

1612년 7월 26일에 태어난 무라트 4세는 1623년 9월 10일 11세의 나이에 술탄이 된다. 나이가 어리다 보니 어머니 쾨셈 술탄이 섭정했다. 당시 오스만제국은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제국이 시작된 지금의 터키지역인 아나톨리아 반도에서는 연이어 반란이 일어났고 이란지역에 있던 사파비왕조는 혼란을 틈타 현재 이라크지역인 메소포타미아를 빼앗아 갔다. 어머니의 섭정을 보고 자란 무라트 4세는 20세가 되던 1632년에 친정을 선언하고 직접 오스만제국을 통치한다. 여러 차례의 반란과 외세의 침입을 지켜봤던 무라트 4세는 오스만제국에 퍼져 있던 부패와 반역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무엇보다 무너져가던 술탄의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1633년 이스탄불에서 화재가 발생해 큰 피해가 나자 무라트 4세는 담배 불씨가 그 원인이었다며 금연령을 내려 모든 곳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했다. 그와 함께 커피와 술도 금지했다. 커피를 만들 때 불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이를 어길 경우 처음에는 경고와 함께 엄청난 벌금을 내도록 했지만 계속 어기면 사형에 처했다. 기도할 때 각성효과를 위해 커피를 즐겨 마시던 수도승들은 모스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무라트 4세는 사람들이 모이면 자신을 험담하거나 반역을 획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모일 거리를 없애려고 한 것이다. 특히 예니체리라는 술탄의 친위대에서 운영하던 카프베(카페)도 있었는데 예니체리에 의해 술탄이 암살되고 폐위되는 일이 있어 이러한 반란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도처에 있던 카프베는 헐리기 시작했고 커피를 마시는 모임은 뿔뿔이 흩어졌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체포되거나 사형에 처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담배와 커피를 즐기던 백성들의 반발심이 커져 갔다. 심지어 단속을 나온 관리들조차 커피와 담배를 즐기다가 체포됐고 나중에는 술탄이 평복을 입고 칼을 찬 채 담배를 가지고 아무에게나 권하며 직접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암행단속으로 커피와 담배는 점점 더 은밀하게 보급됐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은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수를 사용하거나 신체와 옷을 레몬즙으로 닦기도 하면서 ‘콜로냐’라고 불리는 레몬향수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무라트 4세는 술을 너무나 좋아했다. 본인이 법으로 막은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한 비난을 의식해 술은 악마와 같고 나라와 백성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니 자신이 다 마셔 없애야 한다며 많은 술을 마셨다. 마시는 양도 상당해서인지 1640년 2월 9일 28세를 채우지 못하고 사망했다. 커피를 즐겼던 이브라힘 1세는 술탄에 오른 뒤 커피 금지령을 해제했다. 금연령도 그 뒤를 이은 애연가 메흐메트 4세에 의해 없어졌다.

그러나 그사이를 버티지 못한 대부분의 커피 종사자는 탄압을 피해 바다를 건너고 육지를 통해 멀리는 영국과 프랑스로 이민을 갔고 가까이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등지로 이주하면서 오스만제국의 커피문화와 기술이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된다.

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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