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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협 사회부장

“미국 대통령은 정보기관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보고와는 다른 정치적 결정을 내릴 권리도 있다. 그러나 정보기관에 대한 공개 비난은 신뢰를 깨고, 미 정보기관과 협업하는 동맹을 흔드는 행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다른 정책 견해를 내놓은 국가정보기관 수장을 향해 “학교나 다시 다니라”고 비아냥대자, 마이클 모렐 전 CIA 국장대행이 던진 코멘트다. 트럼프의 언행이 초래할 위험을 얼마나 심각하게 느꼈으면 참다못해 이렇게까지 경고했을까. 여기서 주어와 목적어만 바꿔 가정해보자.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기관 판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국가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에 판결 불복운동을 펴고 법관탄핵을 추진하겠다는 식으로 전면전에 나선다면….”

둘 중 앞으로 벌어질 파국의 양상은 어느 게 더 치명적인가. 신뢰의 붕괴, 국정을 흔드는 행위에 대한 우려는 공통적이라고 해도 국가위기의 질적 차이는 분명하다. 행정부 내부의 견해차는 임면권을 거머쥔 대통령이 정리할 기회라도 있다. 그런데 입법부·사법부·행정부로 나뉜 삼권분립 체제에서 한 축이 다른 축의 존재를 부정할 경우 초래할 사태는 감히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설 연휴가 지난 시점, ‘김경수 블랙홀’의 위력이 여전하다. 1월 30일 서울중앙지법 성창호 부장판사가 김경수 지사에게 징역 2년 선고를 내린 지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민주당의 사법부 공격은 여전하다. 주체는 다름 아닌 집권여당의 지도부와 중진들이다. 삼권분립의 원동력이 아무리 견제와 균형이라고 하더라도 분립, 즉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선에서는 성립할 수 없다는 기본적 사실도 무시한 채 민심에 불을 붙이고자 안간힘이다. 내부의 합리적 온건론은 묵살되고 있다. “입법부가 사법부에 직접 칼을 들이댈 수 없다” “판결 불복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목소리는 “법관 탄핵” “사법부 압박”이라는 강경론에 밀렸다.

초법적 발상은 물리적 행동으로 이어질 기세다. 집권여당이 시민사회와 함께 ‘촛불’ 수준으로 판결 불복운동을 전개할 경우 대한민국 사법부는 온전할 수 없게 된다. 시위대에 포위된 법원, 불복 구호가 난무하는 재판정은 과거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분쟁화하는 사태를 촉발할 수 있다. 민주당의 극단적 선택 배경에는 복잡한 정치적 수가 자리 잡고 있을 터이다. 김 지사가 유력 대선주자라거나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서가 아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파동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근본적으로는 김 지사 개인을 넘어 대선과 민주당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드루킹 김동원 씨와 민주당의 연계를 논한 대목을 치명타로 받아들인 민주당이 앞으로 부닥칠 후폭풍을 막고자 승부수를 던진 셈인데 문제는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 자신도 모르는 무리수라는 점에 있다. 사법부를 압박하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전제는 잘못됐다. 재판부가 “범행으로 직접적 이익을 얻은 사람은 김 지사를 비롯한 민주당 정치인들”이라고 규정한 만큼 민주당이 당차원에서 대응할수록 연결고리만 더 선명하게 부각될 뿐이다. 판결에 담긴 경고를 늦기 전에 깨닫고 당장 칼을 거둬야 한다. 속죄만이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하고 현명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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