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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성공요인은 ‘수출 강박’, 대가는 전통문화 단절

엄주엽 기자 | 2019-02-08 09:58


- 케이팝 / 존 리 지음, 김혜진 옮김 / 소명출판

이익논리따라 기획·해외진출
우연·기적으로 이뤄진것 아냐

세계가 미치도록 열광하지만
전통적 감수성 파괴현상 초래

시작점은 ‘서태지와 아이들’
인터넷·디지털 발달로 날개


“케이팝(K-POP)에 붙은 ‘K’는 한국 문화나 전통보다 오히려 ‘Das Kapital’(자본론)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인 출신으로 국제적 명성을 지닌 사회학자 존 리 버클리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석좌교수가 ‘대한민국 대중음악과 문화 기억상실증과 경제 혁신’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케이팝에 대해 요약한 말이다. 그는 “돈(money)은 케이팝에서 처음이요 끝이다”라고 덧붙인다. 리 교수는 1959년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초등학교까지 유년기를 보낸 뒤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고교 졸업 시 하와이주 전체수석을 차지하며 대통령 장학생으로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박사를 했다. 이런 디아스포라적 성장 과정은 그를 동아시아의 사회학 연구로 이름나게 했다. 소명출판에서 그의 대표작 6편을 번역하고 있는데, ‘케이팝’은 이번에 ‘자이니치’ ‘다민족 일본’과 함께 먼저 출간됐다. 리 교수는 1980년대 후반 연세대에서 2년간 강의를 했고, ‘한류’ 현상에 관심을 가지면서 2012년부터 4년 연속으로 고려대-버클리 한류 워크숍을 진행한 뒤 그 성과로 이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미국에서 2015년 출간돼 그동안 국내 문화사회학이나 대중음악 연구자들 사이에 긍정적·비판적으로 인용되며 다소 논쟁을 빚기도 했다. ‘BTS 열풍’까지 최근의 상황을 담아내진 못했지만, 케이팝의 현황보다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저자는 2012년 프랑스 파리에서 우연히 케이팝 콘서트에 갔다가 열광하는 대다수 관객이 백인 청년인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관심을 갖게 됐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문화사회학 혹은 문화경제학 차원에서 접근한다.

책은 크게 케이팝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박정희 시대 등을 거치며 한국 대중음악이 어떻게 발생하고 진화했는지를 통시적으로 살피면서 과연 케이팝은 어디에서 생겼나를 먼저 질문한다. 두 번째로 케이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즉 케이팝이란 현상을 통해 대한민국을 파악하려 한다. 세 번째로 케이팝은 어떻게 인기를 얻게 됐는지를 탐구한다.

저자가 대개 한국이나 일본의 선행 연구를 인용해 다루는 케이팝 이전의 역사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영향과 해방 후 미국의 영향 등으로, 한마디로 전통과 내력을 가려낼 수 없는 혼종성으로 말할 수 있다. 저자가 책의 부제에서 언급한 ‘기억상실증’은 그 ‘전통’이라 말할 수 있는 형식이나 감수성과의 완전한 단절 혹은 파괴를 가리킨다. 한국인들이 급격한 경제발전과 현대화로 인해 자신의 전통문화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조차’ 망각하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저자가 전통과의 단절을 정체성과 관련지어 가치판단을 하진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나중에 한국의 문화 산업이나 케이팝 등이 냉혹한 세계 자본주의 경쟁에서 성공할 능력을 갖추게 된 것도 어느 정도는 20세기 대한민국의 창조적 파괴 역사나 문화기억 상실의 덕택으로 본다. 전통과의 철저한 단절을 가져온 박정희 시대의 ‘수출 강박’과 이후 또 하나의 커다란 단절을 가져온 1997년 ‘IMF 위기’가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경제적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케이팝의 성공은 ‘수출 강박’ 논리, 좋게 말해 외부지향성과 ‘이익 동기’ 논리를 따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차원에서, 케이팝보다 선구였던 제이팝(J-POP)이 한때 반짝했지만 동남아시아조차도 제대로 뚫지 못한 원인을 저자는 일본 대중문화의 내부지향성에서 찾는다. 음악성이 떨어지거나 반일감정 때문이 아니라 거대한 내수시장에 만족하려 하는 내부지향성 탓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음악적인 면에서 케이팝의 시작점을 서태지와 아이들로 본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은 서태지 혁명으로 과거와 단절되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뤘다. 이후 새로운 서구 주류 음악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염성 강한 테크노 비트와 중독적인 후렴구, 감각적인 안무로 케이팝의 양식이 만들어졌다. SM이나 JYP 등으로 대표되는 기획사의 케이팝 스타 양성용인 인큐베이션 제도는 현대 한국판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견줄 만하다. 케이팝은 ‘문화기술’이란 이름으로 해외진출을 시도하게 되는데, 한국 사회의 대규모 인터넷 기반은 여기에 날개를 달았다. 저자는 “케이팝의 부상은 한국 수출의 성공이라는 또 다른 예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한다. 일부 비평가가 케이팝 가수들에게 예술적 자율성과 개인 의지가 없어 보이는 로봇 같다고 조롱한다. 또는 ‘뿌리 없는’ 음악이어서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고도 비판한다. 저자는 삼성 휴대전화의 전통을 한국 전통에서 찾는 사람은 없으며 그걸 걱정하는 삼성 임원이나 세계 소비자도 없다고 말한다. 케이팝은 ‘적나라한 상업주의(naked commercialism)’로 성공했으며, 여기에 문화나 미학을 따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케이팝이 서구의 발전된 문화를 자신의 문화인 것처럼 거리낌 없이 재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케이팝의 성공을 우연이나 기적으로 치부하거나 곧 사라질 것처럼 우려하는 것은 기우일 뿐이라고 본다. 반대로 케이팝을 한국적 가치를 세련되게 표현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한 상품이라든지, 동서양 음악을 접목시킨 것이 성공비결이라는 등으로, 한국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대중음악으로 색칠하려는 노력도 부질없다고 지적한다.

가치판단을 배제한 듯해도, 책에는 저자의 한국 사회를 보는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다. “케이팝은 자신을 말살하는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외적 성공에 거의 전부를 투자한 나라를 보여주는 결과물”이며, 그런 점에서 “케이팝은 한국을 아주 잘 보여주는 창”이라는 것이다. “케이팝에는 진정성과 자율성, 독창성이 없다”는 입바른 소리도 한국 사회를 향하고 있다. 365쪽, 1만4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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