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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수 만화가

진주목걸이는 화합의 동아리
혼자 튀지 않고 함께 빛낸다

인간사회처럼 낙하산도 없어
다이아몬드조차 범접 못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이게 무슨 뜻이냐? 중3짜리한테 물었더니, 구슬에 구멍 뚫는 기술이 없던 옛날 할아버지들이 짜증 나서 한 소리란다. 너무 유창한 해석을 무시하기가 뭣해 살짝 정정해 주었다. 네 말도 맞지만, 원래 뜻은 아무리 좋은 환경의 똘똘한 아이도 힘써 공부해야 훌륭한 인물이 된다는 말이란다. 중3짜리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시큰둥해져 자리를 떴다. ‘공부’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은 눈치였다. 남의 자식이나 내 자식이나 공부시키기가 구슬에 구멍 뚫기만큼 어렵다.

따지고 보면 모든 아이는 꿈이라는 탄소로 구성된 구슬이다. 한국 구슬, 미국 구슬, 중국 구슬, 아프리카 구슬…. 원산지는 달라도 저마다 갈고닦아 좋은 구슬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같다. 사람 구슬만이 아니고 진짜 구슬도 그렇다.

구슬의 간판스타는 진주다. 지구상에 보물도 많지만, 영롱한 빛깔의 진주에 꽂힌 이들은 유독 진주만 고집한다. 그것을 구하러 해외여행에 나선다. 진주는 뭐니뭐니해도 목걸이다. 미녀 모델을 더 우아하게 빛내주는 진주 목걸이. 나는 치과에 갈 때마다 임플란트 광고판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활짝 웃는 여인의 희고 가지런한 치아에서 진주 목걸이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앙증맞게 어깨동무를 한 오글오글 진주 알 형제들. 흡사 율동 없는 군무(群舞), 소리 없는 알갱이들의 오케스트라다.

자고 깨면 통합과 협치를 외치지만, 진주 목걸이야말로 화합과 결속의 최고 팀워크 동아리다. 특별히 제왕적 리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계급장을 굳이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반목과 분규로 골병이 든 인간 조직들은 진주한테 배워야 한다. 그 무슨 흔해 빠진 알갱이 몇 개로 인간 존엄 어쩌고 할 것 없다. 흔해 빠진 스마트폰 노예로 하향 평준화된 인간 구슬과 조개 구슬을 맞비교 못 할 것은 또 무언가. 잘 보라. 진주 목걸이는 한 알도 혼자 튀려 하지 않고, 그래서 다 함께 빛을 낸다. 무슨 당대표, 무슨 의원님들하고 너무나 대조적이다.

진주 목걸이와 인간 조직이 크게 다른 점. 진주 목걸이에는 낙하산이 없다. 다른 알이 쉽게 끼어들 틈도 없거니와 개체수를 무리하게 추가하면 원작이 훼손되고 목걸이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천하의 다이아몬드, 사파이어조차 범접할 수 없다. 끼워 넣지도 않는다. 만취한 세공사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외지인을 불시에 낙하산으로 고공 침투시켜 아무 데고 꽂아 넣는다.

낙하산은 원래 항공산업과 함께 출현한 발명품인데, 엉뚱한 데서 이름을 도용당하고 있다. 사실은 외국에도 그런 낙하산이 없지 않다. 낙하산은 언제, 누구를, 어디에 착지시키느냐가 사명이고 본질이다. 그런데 국산 낙하산은 전혀 엉뚱한 사람이 엉뚱한 곳에 떨어진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만약 자동차 기술자를 미용실에 떨어뜨렸다, 요리 전문가를 정유회사에, 바다 낚시꾼을 PC방에 보내면 당사자가 견뎌낼 수 있을까. 과연 그게 일자리 창출, 인재 등용일까. 된장 만드는 명인을 졸지에 타워크레인을 타게 한다면, 당장 감당이 안 될 것이다. 엄격히 말해 이것은 낙하산 학대, 낙하산 갑질, 노동자 핍박이다. 취업을 못 해 발을 동동 구르는 청년들도 급하지만, 가시덤불에 떨어진 불우 낙하산도 서둘러 구해야 한다. ‘아냐. 나는 괜찮아. 어차피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연봉만 빵빵하면 아무 데면 어때!’ 낙하산 당사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아무런 할 말이 없지만. 그래서 너도나도 낙하산을 못 타서 안달일까.

진주 목걸이는 낙하산이 없다 했지만 비슷한 것이 있기는 있다. 알갱이 한 개가 파손됐거나, 잘 안 지워지는 이물질이 묻으면 ‘알갈이’를 한다. 흠집이 난 놈을 바꿔 끼우면 감쪽같이 새 목걸이가 된다. 그러나 진주들은 절대로 뒷담화가 없다. 너는 우리 조직의 수치야! 떠나는 진주 뒤통수를 그렇게 때리지 않는다. 진주가 사람처럼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고? 전혀 아니다. 사람한테 배웠다면 깨진 알 교체하느라 빈자리가 났을 때, 머리가 터져라 내 사람 내 조직 심자고 한바탕 로비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떠나고, 보내는 진주는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진주의 원칙은 목걸이의 기능 외에 그 무엇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별의 슬픔을 꾹 참으며 모든 욕구를 억제한다. 로또 아파트, 카드 대출…, 대권 잠룡은 그 말의 뜻도 모른다.

오래 소장해 온 목걸이를 내다 파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래도 가끔 주인이 바뀌는 목걸이도 있다. 그러나 진주들은 한결같다. 군주가 바뀌었다고 바짝 엎드리지 않는다. 예스맨 거수기가 돼 자리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새 주인이 여대생이든, 땅투기꾼 할머니든, 닭발집 사장이든 상관없다. 오직 그녀를 아름답게 꾸며 주는 것만이 진주 알의 사명임을, 그야말로 알알이 가슴에 새기고 산다. 멍청할 정도로 우직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자신을 알고 겸손을 안다.

자기보다 훨씬 값진 보석이 세상에 널렸음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오만해 하지 않는다. 주인의 총애를 한몸에 받지만, 영원하리라 믿지 않는다. 어느 날 더 화려한 목걸이를 원하는 새 군주가 자신을 잡동사니 바구니에 내동댕이칠 수도 있다는 각오를 늘 하면서 산다.

불경기라 진주 목걸이 거래가 예전 같지 않다고 상인들이 말한다. 그러나 진주들은 언제나 쌩쌩하다. 집 청소를 끝낸 주부가 서랍장을 열다가 문득 손에 잡히는 그것. 그는 그것을 목에 걸어 본다. 아련한 기억들이 물결처럼 몰려온다.

진주 목걸이는 진정한 섬김이 무엇인지 늘 몸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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