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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교육학

대학 진학 후 등록금 마련 큰 부담
외부장학금 받아 부모님 걱정 덜어

재직하는 대학 앞 음식점 ‘훈이네’
어려운 학생 위해 선뜻 장학금 기부

새해엔 학교 주변의 많은 음식점
장학금 기부에 동참하기를 소망

나의 부모님은 6·25전쟁 때 황해도에서 피란을 왔다. 인천 자유공원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작은 음식점을 운영했다. 나는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에 합격했다. 입학금을 간신히 마련해 마감날 등록했다. 당시에는 대학을 상아탑이라 했는데 우골탑이라고도 했다. 이 말은, 소가 농촌에서는 가장 큰 재산인데 그 소마저 팔아 자식 대학 등록금을 댄다고 해서 생긴 것이다. 그만큼 모두가 대학 등록금에 허덕였다.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 전철을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도서관으로 향했다. 다른 학우들은 당구, 트럼프, 미팅, 막걸리를 즐길 때 나는 그 시간에 공부를 했다.

1학년을 교양학부라 했다. 신입생 전체가 한 건물에서 수업했다. 그 때문에 생명과학을 전공한 나는 의학·불문학·경영학·사학 등을 전공한 많은 벗을 사귈 수 있었다. 첫 학기부터 열심히 공부에 매달렸다.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란 교훈을 가진 고등학교를 나와, 양심을 지키려고 시험을 볼 때면 맨 앞자리에 앉았다. 시험 종료 벨 소리가 울릴 때까지 치열하게 답안지를 썼다. 그 결과, 단과대학에서 1등을 했다. 교양학부 게시판엔 내 이름이 나붙었다. 학교에서는 외부장학금을 주선해 주었다. 그래서 받게 된 것이 3·1문화재단에서 주는 ‘3·1장학금’이었다. 부모님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교외장학금은 일정한 학점을 유지하면 졸업할 때까지 받을 수 있었다. 등록금 전액은 아니지만, 반이 넘는 액수라 부모님의 등록금 걱정을 상당히 덜어드릴 수 있었다.

학교에서 단과대학 1등 학생들을 모아놓고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가 끝난 다음에 학생들을 학교 버스에 태웠다. 도착한 곳은 국립의료원이었다. 병원으로 식사하러 온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병원 안에는 유럽풍의 나지막한 1층 건물 ‘스칸디나비안 클럽’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뷔페였다. 한국 의료 기술 발전을 돕기 위해 파견된 스칸디나비안 나라들(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의료진의 전용 레스토랑이었다. 그래서 난생처음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아래서 황홀하게 차려진 바이킹 뷔페의 음식 맛을 보았다. 그때 훈제 연어란 음식도 처음 먹어보았다.

내가 몸담은 대학은 예술대학이라 등록금이 무척이나 비싸다. 남들이 볼 때는 돈이 많아서 예술 한다고 하는데 실은 어려운 학생이 더 많다. 적지 않은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등록금을 마련하고 있다. 요즘엔 경제가 어렵다 보니 휴학생이 계속 늘어난다.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장학금을 만들어서 주는 것이다. 교비 장학금은 한계가 있기에 외부장학금을 확충해야 한다. 그래서 대기업에 기부를 호소하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대기업은 서울에 있는 대형 종합대학으로만 향한다. 우리 대학에서는 예전부터 선배 예술인들이 후배들을 위해 정성 어린 장학금을 내놓고 있다. 원로 배우인 고 황정순 씨를 비롯해 신구 씨, 길용우 씨, 박상원 씨, 박신양 씨가 기탁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길 건너편에는 ‘훈이네’라는 작은 음식점이 있다. 나는 그곳을 종종 이용한다. 오전 강의가 끝나면 그곳에서 가격이 무척이나 착한 점심 특선을 주문한다. 옛날 맛 잡채, 맛있게 구운 생선 한 토막, 겉절이 김치, 싱싱한 시금치, 고소하게 볶은 멸치, 고추장 넣고 끓인 돼지고기, 시원한 미역국, 조 쌀밥이 한 상 가득 차려져 나온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그곳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특히, 동네 어르신들이 친구들과 함께 와서 담소를 나누며 맛있게 드신다. 어떤 때는 할아버지와 어린 손주까지 온 가족이 모여 행복하게 식사를 한다.

요즘에는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이 맛있게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종종 본다. 훈이네 입구에는 ‘착한 가격 음식점’이란 명패가 붙어 있다. 내가 학교에 온 후로 이곳에서 줄곧 식사했으니 거의 열다섯 해가 되었다. 그리고 일 년에 서너 번은 내가 지도하는 동아리 학생들을 데려와 삼겹살을 사준다. 젊은 학생들이라 고기를 정말 맛있게 먹는다. 가게 안에서는 젊은 사장님이 서빙을 하는데, 훈이네 간판 주인공인 훈이 씨다. 부인도 함께 일을 돕는다. 또한, 주방 안에서는 어머님이 음식을 조리하고 아버님은 음식 재료와 불을 준비한다. 이렇게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정성을 다해 음식점을 운영한다.

어느 날, 그 젊은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학교에 장학금을 내실 생각이 없으신지요? 학교에는 의외로 어려운 학생이 많습니다. 적은 금액도 괜찮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저도 학교의 도움을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형편이 어려워 많이는 못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가 돼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대답을 주었다. 마치 내가 장학금을 받게 된 듯 기뻤다. 대학본부 장학금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전했더니 너무나 좋아하며 나더러 훈이네 1기 장학생을 추천하라고 했다. 그래서 전공지도교수의 도움을 받아 장학생 후보의 포트폴리오를 받았다. 예술 창작에 대한 그의 의지와 열정이 대단했다. 결국, 그 학생을 추천했고, 학생은 감사의 편지를 정성껏 써서 훈이네로 보냈다.

이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대학 선생을 하면서 느낀 보람으로 한 손안에 꼽힐 것 같다. 이제 또다시, 학교 주변에 있는 다른 많은 음식점에서도 장학금 기부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수라상 장학금, 연우식당 장학금, 예대백반 장학금, 양산박 장학금, 밥알 장학금, 경성주점 장학금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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