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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 정치학

촛불 앞세운 정부 출범했으나
대통령은 소통을 불편해하고
청와대 중심 국정운영도 불변

총리와 장관의 역할 미약하고
의사결정 투명성도 개선 없어
정치권력부터 달라져야 한다

2016년 겨울, 온 국민의 열망 속에 피어올랐던 촛불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변화는 참으로 크다. 잇단 정책 실패와 사회 불안에도 국민에게 눈과 귀를 닫고 이른바 ‘비선 실세’에 정책 결정을 의존한 정치권력이 교체되고, 이전 정권과 완연히 차별되는 리더십을 내세운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시적인 변화가 잇따랐다. 촛불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된 정부답게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 의지를 강조하며 성장과 기득권 중심의 정책에서 분배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수많은 정책이 시행됐다.

이러한 정치권의 변화와 함께 사회 여러 곳에서는 그간 억눌려 왔던 잠재적인 갈등과 불만이 적극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야기되는 보이지 않는 차별에도 묵묵히 이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저항을 상징하는 미투(Me Too) 운동, 직장 내 갑질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 제기와 시정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는 그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오던 여러 가지 불합리한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적극적이고도 정당한 요구였다. 새로운 변화의 요구에 정부를 비롯한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반응한 점 역시 이전과는 달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 변화 움직임과 함께 한반도 주변 정세도 변화했다. 오랜 시간 소통 없이 불안한 평화 국면을 이어가던 남북관계는 불과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할 정도로 상호 전향적인 태도와 변화 의지를 내비치며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변화 속에서도 우리에게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것들도 목격된다. 사회의 변화 요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정치권의 다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염불이 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실제로 사회 각계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한 법안들은 정당과 정치인들의 당리당략에 따른 손익계산 속에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적극적인 소통을 전면에 내세우며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대통령은 점차 그 소통의 빈도가 낮아지며 결국 순방길의 기자간담회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말았다. 더불어 촛불을 통해 그토록 비판해 왔던 청와대 중심의 국정 운영은 그대로이며, 실제 정책을 담당할 총리와 장관의 모습은 여전히 미약하다. 국회의 예산안 처리를 두고 제기됐던 여러 가지 비판은 올해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급기야는 이전에 수도 없이 공언해 왔던 대표성과 책임성을 담보할 선거제도 개혁마저 거대 정당들의 담합 속에 지지부진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한국 사회는 변화의 목소리와 움직임은 있으나 아직 실질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뒷받침하듯 출범 이후 전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던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은 하강 국면에 접어들어 이제 절반 수준까지 내려왔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율도 초반의 기세에서 크게 꺾인 모습이다. 여론조사에 기반하고 있어 가변성이 큰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긍정적이지 않은 신호임엔 틀림없다.

집권 1년 반이 조금 지난 현재 정치권이 처한 상황은 분명 위기 국면이다. 촛불을 통해 국민이 기대했던 개혁의 내용은 지역 구도 완화, 파행적인 정치 문화 극복, 부패청산, 권력 분산을 통한 민주적이고도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 확보 등으로,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개혁은 그 당위성을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인식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반대파를 압박, 설득하는 과정에서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와 정치권이 이러한 과정에 온전히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촛불은 경제개혁은 물론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그 어느 때보다 우호적인 상황을 만들어줬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정치권의 대응은 촛불의 지지를 이어 나가는 데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촛불 시민은 지금의 정부와 정치권이 과거와 다르고 또 달라야 함을 요구했다. 이전과의 다름은, 저마다의 당리당략이 아닌 개혁에의 동참이며 적극적인 실행이며, 이를 위한 첫걸음은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지난 정부와 다름을 보임으로써 촛불 정신을 구현하는 일은 결국 대통령과 여당의 몫이다. 촛불의 의미를 잊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