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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식품 같은 ‘황후의 품격’…“욕나오는데 채널은 못 돌리겠다”

안진용 기자 | 2018-12-06 14:29

여기 희한한 드라마가 있다. 욕을 먹을수록, 비판을 받을수록 힘이 세진다. 혹평이 난무하고 시청자들도 ‘막장’이라 아우성인데, 그 끝에는 “또 보게 된다”며 혀를 내두른다. SBS 수목극 ‘황후의 품격’(극본 김순옥·연출 주동민)이 그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는 일종의 불량식품 같다. 이야기 흐름이 매끄럽지도 않고, 교훈적이지도 않다. 주고받는 대사가 기가 막히거나 영상미가 빼어나지도 않다. 하지만 자꾸 손이 가고, 눈이 가는 ‘마성의 드라마’다.

일단 작가의 이름을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여주인공이 얼굴에 점 하나 찍고 180도 변신하는 ‘아내의 유혹’을 시작으로, ‘장보리로 왔다가 연민정을 갔다’는 평가를 받으며 희대의 악녀 연민정을 탄생시킨 ‘왔다 장보리’를 비롯해 ‘내 딸 금사월’ 등을 집필한 김순옥 작가의 신작이다. 일일극이나 주말극을 쓰던 김 작가는 첫 주중 미니시리즈에 도전하며 대본에 ‘캐서린’이라는 필명을 붙이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작가는 달라진 것이 없다. 캐릭터들은 그동안 그가 쓴 작품 속 누군가와 비슷하고, 이야기의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고 덜컥거린다. 각 등장 인물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개연성이 없고, 대사는 촌스럽다. 주말극이었다면 수긍할 만하지만, 숱한 스타들과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각축장인 주중 미니시리즈 기준으로 봤을 때 ‘황후의 품격’은 세련되지 못하다.

하지만 김 작가 특유의 매력은 살아있다. 바로 화수분처럼 샘솟는 사건과 속도감이다. ‘황후의 품격’은 질질 끄는 법이 없다. 순식간에 사건이 발생하고 또 해결된다. 한시름 놓으려 하면 여지없이 사건이 터지고 또 매듭지어진다. 욕하면서 보던 시청자들이 리모컨을 누르며 다른 드라마 갈아탈 타이밍조차 뺏는 듯하다. 질질 끄는 ‘고구마’를 싫어하고, 빠른 전개를 원하는 스마트폰 세대의 입맛에 딱 맞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황후의 품격’의 인기를 설명하긴 부족하다. 이 드라마는 5일 방송된 9, 10회가 전국 시청률 9.3%까지 기록했다. 자체최고기록인 동시에, 심지어 배우 송혜교, 박보검이 주연을 맡은 tvN 드라마 ‘남자친구’와 동률이다. 수도권 시청률은 10% 고지를 넘어섰다.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일까?

일단 주동민 PD의 극성 강한 연출이 한몫했다. 상반기 방송된 ‘리턴’을 연출했던 주 PD는 출연 배우와 내홍을 겪기도 했지만, ‘리턴’으로 최고 시청률 17.4%를 기록했다. 두 주연배우가 투샷으로 잡히며 평범하게 대사를 주고받는 ‘복사해 붙이기’식 패턴의 주말극으로 영상화되던 김 작가의 작품이 주 PD를 만나며 생동감을 얻었다. 물론 자극적인 장면 탓에 ‘막장’이라는 비판은 뒤따른다. 하지만 진부한 화면 구성과 연출 패턴을 벗으면서 ‘황후의 품격’은 “주말극 같다”는 지적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5일 방송에서는 주인공인 최진혁과 신성록의 검술 대결 장면에 애니메이션이 접목됐다. 다소 뜬금없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신선한 시도였다는 호평도 적지 않았다. 김 작가표 주말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도였다. 주중 미니시리즈 시장에 처음 도전하며 한 수 배워야 하는 김 작가가 주 PD에게 고마워할 만한 대목이다.

그보다 더 ‘황후의 품격’을 단단히 지탱하는 두 축은 단연 배우 장나라, 최진혁이다. 솔직히 말하자. 두 사람이 김 작가가 집필하는 ‘황후의 품격’에 출연한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 “다른 작품 하라”는 팬들의 아우성이 대단했다. 전작인 ‘고백부부’와 ‘마성의 기쁨’으로 각각 ‘커리어 하이’를 찍은 두 배우가 ‘막장’이라 불릴 만한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가 두 배우의 명성에 먹칠을 하기보다는, 두 배우의 명성이 ‘황후의 품격’을 쌍끌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극부터 코믹까지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장나라는 다소 민망할 수 있는 장면까지 부드럽게 소화하며 호평받았다. 뜬금없이 ‘아모르 파티’와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에서조차 “그 와중에 노래 잘하는 장나라” “희극을 정극으로 만드는 장나라”라는 칭찬이 쏟아졌다.

최진혁 역시 심지 굳은 연기로 ‘황후의 품격’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5일 방송 분량에서는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분출하는 장면을 매끄럽게 소화하며 힘을 실었다. 고난도 액션 연기와 경호원에 걸맞은 외적 조건도 흠잡을 데 없다. “최진혁의 연기를 볼 때는 다른 생각이 안 든다” “같은 프레임 안에서 연기 레벨이 다르다”는 댓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부조화 속의 조화는 ‘황후의 품격’을 수목극의 맹주로 만들었다. ‘남자친구’가 1강(强)일 거란 예측 속에 ‘황후의 품격’이 “욕하면서 본다”는 고정층을 늘리며 2강 구도를 확립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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