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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두 연세대 일반대학원 교수

국민 신뢰도 75%인 독일 경찰
권위 인정받고 직업 선호 1위
흑역사 딛고 사회질서의 보루

한국 경찰은 집단구타도 방치
무단점거 농성에도 몸 사리기
국민 아닌 정권의 머슴 꼴불견

독일은 법과 질서의 나라다. 독일 국민의 질서 의식은 횡단보도에서 잘 나타난다. 아무리 바빠도, 좁은 도로에 지나가는 자동차가 없어도, 모든 행인이 교통신호를 기다린다. 만일 급한 일로 길을 건널 경우, 등 뒤에서는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고, 앞에서는 못마땅해하는 눈빛과 마주칠 수 있다.

독일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파란 불은 길을 건너라는 것이고, 빨간 불은 조심해서 건너라는 것이다’하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질서보다 자유가 우선시된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유류세를 올리자 수많은 시민이 연일 폭력시위를 벌여 파리 시내를 초토화시켰고,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05년의 난동 이후 또다시 비상사태 선포를 고민할 정도로 질서가 무너졌다.

사회질서를 담당하는 것은 경찰이며, 법을 잘 지키는 나라의 국민은 경찰을 우대한다. 독일에서는 경찰에게 반말을 하면 최고 600유로(약 76만 원)의 벌금형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권위를 인정받고 시민을 돕는다는 긍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경찰은 독일 청소년의 15%가 희망하는 1순위 직업이다. 또한,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서도 늘 1등을 차지한다. 올해 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75%가 경찰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아파트 주민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경비원을 찾듯이, 독일에서는 일상의 안전에 조그마한 문제라도 생기면 경찰에게 도움을 청한다. 독일에는 주택에 담장이 없고, 국경에 철조망이 없다. 하지만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에 속한다.

독일 국민이 국가를 신뢰하고 친근하게 느끼는 것은 국민을 위해 봉사해온 국가의 오랜 전통 때문이다. 18세기 중엽 프리드리히 대왕은 전쟁터에 나갈 때 “내가 포로로 잡히더라도 나를 구하기 위해 적에게 돈을 주거나 국가이익을 양보하지 말고 계속 싸워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 강대국의 영토를 빼앗아 1760년쯤에 변방의 프로이센을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시켰다. 그런데 프리드리히 대왕이 백전백승(百戰百勝)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이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국가의 제1머슴’이라고 부른 계몽군주였다.

하지만 그런 독일이 악행을 저지른 적도 있다. 나치 시대의 경찰은 모두 나치당원인 동시에 히틀러의 친위대에 가입했고, 그들은 독재자의 명령에 따라 인종청소를 수행하는 도구가 됐다. 하지만 전후 독일의 경찰은 자성(自省)했고, 이제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독일이 이웃 나라에만 사죄한 게 아니라, 자국민에게도 반성하고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경찰이 몸을 사리고 있다. 공권력을 행사한 경찰관이 과잉 대응으로 처벌받고 소송을 당하는 상황에서, 장기 천막 농성과 공공기관에 대한 무단점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기업인이 집단 구타를 당해 피투성이가 돼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법원장이 탄 차에 화염병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의 수장이 곧바로 찾아가서 고개를 숙였다. 경찰이 누구의 머슴인지 보여주었다.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경찰이 일관성 있는 자세를 보여주면 좋겠다. 국민을 위하는 경찰은 늘 당당할 것이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한몸에 받는 경찰이라면 정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면서 독약을 마셨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자신에게 유리한 법과 규칙을 골라 지키려고 들면 나중에는 법 자체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법치국가는 가끔 불편을 주고, 공권력은 부당한 처분을 하는 과오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법치가 무너지면, 무법천지(無法天地)가 된다. 최근 경찰 내부에서는 사소한 불법은 문제 삼지 말라는 지침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처분이 관행이 되면 관습법으로 굳어질 것이다.

행정안전부 장관이 최근 경찰에 공권력 확립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장관이 우리를 지켜 줄 것이냐고 묻고 있다. 경찰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은 법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민들이다. 국민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법질서를 지키기 위해 경찰이 최선을 다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사소한 법까지 지키고, 경찰의 권위를 인정해줄 때, 경찰은 시민을 지키는 열정과 긍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