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7일 국회 앞에서 열린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집회에 참석해 “노조하기 편한 시(市)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은 공직자의 정도(正道)를 넘어선 일임은 물론, 1000만 명 가까운 서울시민에 대한 배신으로 비친다. 원론적으로 노동조합도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이익집단’이라는 점에서 표현 자체로는 그럴 듯하지만, 현재 서울 및 국가가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서울시정을 책임진 사람으로서는 매우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언동이다.

한국노총 집회는 기본적으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에 반대하려는 목적이었다. 단위 기간 확대는 심각한 고용 상황 등을 해소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지난 5일 청와대에서 합의한 핵심 사항이다. 그런데 박 시장이 어렵게 정부·정치권이 합의한 경제 살리기 대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박 시장은 탄력근로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 ‘정치적’으로 보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21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서울시 대표적 산하기관 서울교통공사는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 고용 세습으로 지탄받고 있는데, 박 시장은 민노총 소속 노조 편에 서서, 문제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고 전직 공사 사외이사가 지적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양대 노총에 모두 손을 내미는 모양새가 됐다. 양대 노총의 조합원 수는 한국노총 96만, 민주노총은 83만 명에 이른다. 정치인으로서는 군침이 도는 조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서울시장이 할 일은 노조 활동하기 편한 시가 아니라 시민이 편한 시, 좋은 일자리가 많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기득권 노조 개혁은 국가적 과제다. ‘노조 권력’을 상대로 한 박 시장의 구애가 시장직을 ‘자기 정치’에 악용하는 것으로도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