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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권 전국부장

정부는 6일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소속 1453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채용 비리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은 최근 5년간 인사·채용 전반에 걸친 각종 부정행위다. 올 국회 국정감사를 뜨겁게 달궜던 공공기관 채용 비리 의혹의 시발점이 됐던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 등에 대한 공세를 정치 공격으로 규정하고 “법적 책임까지 묻겠다”고 했던 서울시의 채용 비리 의혹 실체가 드러날지 관심이다. 정부 조사에서 교통공사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거나 반대로 결백이 입증되더라도 서울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민심 불감증’에 빠졌다는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혈연 등 특수 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질 좋은 일자리를 차지한 것을 보면서 취업 기회의 평등성과 과정의 공정성이 훼손됐을 수도 있다는 분노의 표출이다. 최악의 실업률 속에 억눌려 있던 ‘을’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각종 채용 비리 의혹 제기를 “정규직화가 마치 청년 일자리를 뺏는 것처럼 왜곡해 을과 을 싸움을 조장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시의 청년 및 노동정책을 공격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착각은 엉뚱한 해법을 내놓는 것으로 이어졌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일벌백계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으니 ‘해 볼 테면 해 보자’는 식으로 흘러갔다. 절차적 정당성만 내세운 행정편의식 자만과 엘리트주의에 빠진 서울시가 민심을 읽지 못한 것이다.

실제 박 시장이 3선에 성공한 이후 서울시에서는 바닥 민심과 동떨어진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7월 박 시장은 싱가포르에 출장 가서 “여의도를 통으로 재개발하겠다”고 밝혀 치솟는 서울 집값에 기름을 부었다. 9월 스페인 출장에서는 “도심 상업건물 내 임대·공공 주택 건설을 검토하겠다”고 말해 부동산 시장을 들쑤셔 놓았다. 오죽하면 서울시청 출입기자들이 시민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사안은 외국에서 발표하지 말고 정식 브리핑을 통해 공개해 달라고 요청까지 했을까.

문화일보 창간 27주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시장은 여권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이낙연(12.4%) 국무총리에 이어 2위(9.5%)를 차지했다. 20대 젊은 층에선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박 시장이 지난 7년간 공들여 온 청년·노동 정책이 채용 비리 의혹으로 훼손되거나 폄훼되는 것을 막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민심이 함께하지 않으면 해명은 변명이고,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말은 협박이자, 행정 갑질이다.

최근 기업이나 조직에선 반대 목소리를 내거나 쓴소리를 전문으로 하는 ‘레드 팀(Red Team)’을 만드는 곳이 늘고 있다. 리더의 카리스마가 강해지면 체제 순응적인 분위기가 확산하고, 비판이나 쓴소리가 사라져 집단 사고의 편향성 위험에 빠지기 쉽다. 권력의 속성상 박 시장의 대선주자 입지가 강화될수록 내부의 쓴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서울시 요직은 박 시장 측근들이 차지하고 있다. 박 시장과 서울시가 민심과 더 어긋나기 전에 “난 반댈세”라고 말하는 레드 팀을 만들 때가 됐다.

y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