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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소설가, 서강대 명예교수

이맘때면 졸업생 취업 신경
첫 직장 선택은 두려운 순간

‘미개척 길’걷는 靑春의 정열
이상하게 끌려 많은 것 배워

즐겁고 아름다운 삶 위해선
“대가 치러야 한다” 값진 경험

미국의 미남 배우 폴 뉴먼은 온갖 명성을 누리고 난 만년에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자신이 생각해도 매우 이상한 직업이라고 자평했다는 기사를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다. 한 번쯤 자신의 직업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서, 어쩌다 이 직업을 택하게 됐는지, 또 이토록 오랫동안 변함없이 한 일에 종사하게 됐는지 기이한 생각이 들어 자문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자의든 타의든 무수히 직업을 바꾸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많은 사람이 그러듯이 나도 유년에 여러 직업을 꿈꾸었다. 만화가에 이어 화가가 되려고도 했다. 그저 꿈만 꾼 것이 아니라, 그 길로 들어서기 위해 필요한 정보도 모았고, 실제로 진지하게 그 안에 빠져 보기도 했다. 더 나아가 그 직업을 가진 사람 한 명 정도는 이리저리 수소문해 만나보는 열심을 부리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민감하던 유년기의 넘치는 연민으로 인해 약한 자의 억울함을 풀어준다고 믿은 변호사라는 직업도 있었고, 일찍이 평화주의자였기에 외교관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마치 외교관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거나 억울하게 빼앗긴 국경을 되돌려줄 정도의 힘이 있는 직업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반 발짝 정도 들어가 보니 말싸움도 싫었고, 끊임없이 이 나라 저 나라로 부유하는 삶도 체질에 맞지 않았다. 좀 더 커서는 연민과 변호, 평화와 외교가 현실에서 늘 그렇게 서로 잘 짝지어지는 단어 쌍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에 대해서는 단호히 관심을 끊었다. 직업과는 무관하게 취미로 배우고 싶은 기술도 여럿 있었다. 보석 감정, 가구 목공, 가죽 책 제본, 전각 기술…. 그러나 매번, 채 한 달의 배움도 견뎌내지 못하고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손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꿈꾸는 것으로, 그에 관한 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공적이든 아니든, 주기적으로 직업군 조사가 이뤄지고 또 발표된다. 몇 년 전부터는 부쩍 새 시대의 유망한 직업, 사라질 직업, 새로 생기는 직업, 시대와 사회가 많이 변해도 변함없이 남아 있을 직업 등 미래의 직업들에 대한 진단과 정보가 적지않이 난무한다. 아마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과학기술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에 가까운 인공지능(AI)이 우리의 일상에 친근하게 들어오며 만들어진 현상이 아니었나 추정한다. 게다가 직업이란 시대를 초월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주제이기 때문이리라.

늘 이맘때가 되면 졸업생들의 취업 상황에 신경을 써야 하는 자리에 오래 있었기에 직업 관련 정보는 근거가 확실하지 않아도 거의 본능적으로 꼼꼼하게 살펴보게 된다. 상당한 시간을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다 보니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실 졸업 후의 첫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은 경제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긴장이 되며 두려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취업 시즌이 되면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나는 되도록 관찰과 직관을 총동원해서, 개개인의 장점과 가능성을 얘기해줘 잦아든 자신감을 키워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시대와 무관하게 첫 취업은 호불호를 따져서 선택할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들은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선택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당하는 것을 수락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삶에 우연이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점쟁이도 예언가도 아니지만, 오랜 시간 적지 않은 청년들의 삶을 지켜보다 보니 확인하게 된 한두 가지 사실이 있다. 물론 일반화해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졸업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졸업생들이 학교를 찾아올 때는 그들의 삶이 만족스럽게 굴러갈 때다. 물론 가장 평범한 만족감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지위나 수입이 가져다주는 것이다. 큰 수고의 결과다. 그러나 적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만족감은, 다른 변수가 없을 때는 곧 떠나야 하는 그들의 지위로 인해 얼굴에 어둠의 그림자를 만든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도 조금은 각별한 빛의 만족감, 시간이 지나가도 그다지 닳은 것 같지 않은 에너지를 가지고 연구실을 찾아오는 제자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 지위나 수입의 많고 적음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찾아내어, 여전히 즐겁게 그 일을 하고 있다는 데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들 각자의 개인사를 조금은 알고 있는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와 일을 찾아 나서느라 세상의 여러 좋은 제안을 포기하고 고생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학을 포기하고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승진 가도를 달리던 회사를 그만두고 음향 쪽 전문가가 되기 위해 유학길에 오르는 것 역시 쉬운 결정은 아니다.

아니면 공부를 그만두고 친구들과 실험적 회사를 차리는 모험을 하는 것, 미래가 불안정한 미개척의 길을 가는 것…. 이상하게도 나는 이들에게 끌린다. 이들의 순수한 정열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들은 어렵게 찾은 그들의 정열과 즐거움을 위해, 그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 중에는 즐거운 일을 하기 위해 투잡을 뛰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삶이 풀리고 안 풀리고와는 상관없이 옛 선생을 찾아온다. 아니 오히려 슬럼프에 빠질 때 더 찾아온다. 같이 나이가 들다 보니 서로 힘을 주는 친구가 돼 있다.

즐거움이란 비싼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에 가격을 매길 수 없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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