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채용 비리가 공정과 정의를 좀먹는 반사회적 행태이지만, 공공(公共)기관의 ‘고용 세습’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 행위다. 특히, 최악의 청년 실업(失業) 속에서 바늘구멍 같은 취업 문을 통과하기 위해 수 십 곳에 원서를 내는 등 최선을 다하는 취업 준비생들의 피눈물이 흐르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현 정권의 대응을 보면 과거 정권의 채용 비리에는 매우 엄격하고, 현 정권과 관련된 부분에는 소극적으로 비친다.

문재인 대통령은 강원랜드 채용 비리와 관련, 공공기관 전수조사와 함께 “가담자나 부정합격자 처리에 소극적인 책임자는 엄중히 책임을 물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부정 합격자 226명 전원에게 사법 처리 이전에 인사 조치가 이뤄졌다. 최근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드러난 친·인척 채용 의혹은 죄질이 더 나쁘고, 임직원·노조의 도덕적 해이와 결탁, 특정 노조의 세 불리기, 조사 회피 및 통계 왜곡 등의 문제점까지 심각하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지난 3월 무기계약직 1285명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직원 수가 1만5674명에서 1만7306명으로 늘어났는데, 2020년까지 공채 선발 인원을 1029명 줄이는 계획을 세웠다는 보도도 있었다. 무리한 정규직화가 청년 일자리를 빼앗고, 고용 세습은 일자리 도둑질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 국정조사와 제도 개혁은 당연하고 시급하다. 현재 드러난 고용 세습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할 정도로 다른 기관에도 만연할 가능성이 크고, 노·사 및 당사자들의 이해 일치로 쉽게 밝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기관들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도 병행해야 한다. 당장 현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고 비리 연루가 드러나면 엄단해야 한다. 자유한국당(112석)·바른미래당(30석)·민주평화당(14석) 등 3개 야당은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조(國調)를 추진키로 했다. 여당이 감사원 감사를 앞세우는 것은 지연 전술로 비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을과 을의 싸움을 조장한다”고 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일이다. 박 시장 스스로 서울교통공사 등 산하 기관 친·인척 채용 의혹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