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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철 “사무실 출퇴근 아직 어색, 축구행정은 또 다른 도전”

허종호 기자 | 2018-10-17 10:52

최진철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축구회관에 전시된 역대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설명하는 최 위원장.   김동훈 기자 dhk@ 최진철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축구회관에 전시된 역대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설명하는 최 위원장. 김동훈 기자 dhk@


최진철 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

지난1월 ‘발령’… 상근직 업무
“K리그 재밌어야 팬들 사랑받아
경기속도 높여 박진감 유도해야”

“현장 계속 지켜볼 수 있는 자리
다양한 경험 갖춘 지도자가 꿈”
프로 코치, 전임 지도자 등 활동

2015 U-17 대표팀 감독 맹활약
‘축구 강호’ 브라질 첫 제압 화제
“어린 선수들에게 외려 많이 배워”


최진철(47·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은 명수비수였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멤버. 2006 독일월드컵에선 ‘맏형’으로 후배들을 이끌었고 핏빛 붕대 투혼을 펼쳐 가슴을 울렸다. 2007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지도자의 길을 걸은 최 위원장은 칠레에서 열린 2015년 17세 이하(U-17) 월드컵 B조 조별리그를 2승 1무, 1위로 통과하고 16강에 진출해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브라질, 잉글랜드, 기니 등 남미, 유럽, 아프리카의 강호들과 만나 패하지 않고 조별리그를 마쳤다. 특히 축구강국 브라질을 1-0으로 꺾어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브라질을 제압한 최초의 한국 대표팀 사령탑으로 등록됐다.

최 위원장은 2016시즌 프로축구 K리그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직을 맡았지만 그해 9월 자진사퇴했고, 지난 1월부터 ‘행정가’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이 그의 직책. 경기위원장은 프로축구연맹 분과위원회 소속 경기위원회를 이끈다. 경기위원회는 프로축구연맹 주관 대회의 운영, 발전을 위한 주요정책 연구를 진행한다. 또 프로축구연맹 주관 대회의 경기를 총괄적으로 감독하고, 경기 진행에 관한 모든 책임과 권한을 지닌 경기 감독관을 관리한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만난 최 위원장은 행정가 수업이 ‘축구인 최진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정 업무를 경험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겁니다. 경기위원장이라는 직책은 특히 현장을 계속 지켜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무엇보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균형 있게 양 팀을 살필 수 있죠. 그리고 경기 밖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관찰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시야가 넓어지는 걸 느낍니다. 축구행정은 저에겐 또다른 도전입니다. 그런데 아직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게 어색하네요.”

K리그 평균 관중은 2010년 이후 감소세다. K리그 평균 관중은 2010년 1만2873명, 2011년 1만709명, 2012년 7157명, 2013년 7656명, 2014년 8115명, 2015년 7720명, 2016년 7854명, 2017년 6502명이었다. K리그라는 ‘상품’의 가치를 높여야 하는 경기위원장에겐 반갑지 않은 일. 그래서 최 위원장은 경기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또 고민한다.

“K리그 경기가 재밌어야 팬들을 끌어모을 수 있습니다. 경기 진행 속도가 빨라지면 공격축구든 수비축구든 관중과 팬들의 입맛을 당길 수 있습니다. 속도가 빨라지면 박진감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팀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에 ‘속도 조율’이 쉽지는 않지만 관중이 좋아하는 축구를 펼치자는 공감대가 있기에 불만은 줄고 있습니다.”

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은 상근직이다. 최 위원장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프로축구연맹에 오전 8시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한다. 그리고 주말엔 전국 곳곳의 경기장을 방문한다. 휴일은 금요일 하루지만 최 위원장은 상벌위원회 등에 참석해야 하기에 쉬는 날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는다.

“K리그의 모든 경기를 평가해야 하기에 쉴 틈이 없습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하면 1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주 중 경기가 없는 요즘엔 숨통이 좀 트입니다. 그래도 행정에 대해 잘 모르기에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이 재밌습니다. 일을 배워가는 과정이 재밌고, 프로축구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게 즐겁습니다.”


한일월드컵에서 홍명보와 최진철은 철벽수비 라인을 구축했다. 지금은 홍명보(49)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둘 다 상근직이며, 함께 축구회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으로 소속은 다르지만, 한국 축구 발전을 모색한다는 목표를 공유한다. 최 위원장은 축구협회에선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을 맡고 있다.

“프로축구연맹의 일은 축구협회와는 다르지만 서로 협의가 필요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경우 홍 전무에게 요청하면 호의적으로 받아줍니다. 홍 전무가 프로축구연맹에 도움을 주는 데 적극적이기에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홍 전무는 배울 게 많은 선배이기에 홍 전무와 함께하는 것 또한 저에겐 행운입니다.”

전남 진도군에서 태어난 최 위원장은 네 살이 되던 해 제주로 이주했고 열 살 때부터 공을 찼다. 제주서초등학교, 제주중앙중학교, 오현고등학교 등 제주 내 학교를 거쳤다. 그리고 1990년 숭실대에 입학하면서 제주를 떠났다. 제주와 달리 서울은 낯설었다. 가족과 떨어진 최 위원장은 외로움을 느꼈고 대학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자주 부상에 시달렸다. 제주에선 겨울에도 운동할 수 있었지만 서울은 10월부터 추위가 시작돼 고생했다.

“서울살이는 처음부터 힘겨웠습니다. 그리고 실업팀 입단 계획마저 틀어졌습니다. 입단하려던 실업팀에서 선수를 뽑지 않았거든요. K리그 드래프트 신청 기간이 마감돼 정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뻔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군에 입대(상무)했습니다. 전역한 뒤 1996년 전북 현대에 입단했는데, 숙소에 거주해야 했습니다. 고교까지 제주에 머물 땐 집에서 쉴 수 있었지만 대학 입학부터 군 전역까지 6년가량은 숙소에서 머물며 단체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정말 숙소에 있는 것이 싫었기에 전북에 입단했던 해 6월 결혼하면서 숙소에서 ‘탈출’했습니다. 시즌 도중 결혼했기에 당시엔 엄청 욕을 먹었죠.”

최 위원장은 2007시즌이 끝나고 은퇴했고 2008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강원 FC 코치, 축구협회 전임지도자, U-16 대표팀 감독을 거쳐 2015년 U-17 월드컵 사령탑을 맡아 16강에 올랐다. ‘죽음의 조’에서 2연승을 거둬 조기에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브라질을 조별리그 1차전에서 1-0, 기니를 2차전에서 1-0으로 제압했고 잉글랜드와는 0-0으로 비겼다. 비록 16강전에서 벨기에에 0-2로 패해 탈락했지만 전통의 강호들을 제치고 조별리그를 통과했기에 최 위원장의 지도력은 집중조명을 받았다.

“U-17 월드컵은 좋은 경험이었고 행복했습니다. 어린 선수들이지만 함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느꼈습니다. 당시 선수들에게 ‘우리가 넘지 못할 산은 없다’고 강조하면서 자신감을 불어 넣었습니다. 재주 있는 어린 자원들이 K리그와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도록 유도하는 건 프로축구연맹 임원, 그리고 선배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렵니다.”

최 위원장은 행정가로 ‘외도’하고 있지만 그의 목표는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최 위원장의 경력은 다채로운 편이다. 프로구단 감독과 축구협회 전임지도자, 그리고 연령별 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전임지도자 시절엔 한 달에 1차례씩 3∼4일 훈련을 지휘했고 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리고 훈련, 대회 때마다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엔 보고서 작성처럼 글을 쓰는 게 성가신 일이었지만, 지금 경기위원장직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특정 구단에 소속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K리그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예전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선수들의 재능, 기량이 눈에 들어온다. 반대로 예전엔 관심을 지녔던 선수들의 단점을 확인할 수도 있다.

“경기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선수, 감독 시절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걸 느끼고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 개인적인 발전에 자양분이 됩니다. 지금은 경기위원장직에 전념하겠지만, 여기서 얻은 경험을 지도자로 돌아가 활용한다면 더욱 깔끔하고 매끄럽게 선수단을 관리할 수 있을 겁니다. 훌륭한 지도자, 그것이 저의 꿈이고 목표입니다.”

허종호 기자 sportshe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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