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종군(오른쪽) 장도장(粧刀匠·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이 전남 광양의 광양장도박물관 작업실에서 전수장학생인 차남 박건영(가운데) 씨와 이수자인 아내 정윤숙 씨에게 장도 제작 과정을 시연해 보여주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 ‘장도 만들기’ 3代째 잇는 무형문화재 박종군 씨 가족

아버지의 일 돕다가 40년째 외길
두 아들·아내까지 이수자로 참여
177가지 공정 거치는 지난한 작업
생활고 견뎌내며 힘겹게 전통 이어

광양 특산물로 한때는 혼수감 1호
보통 30만원선… 소재별 천차만별

1980년대 후 쇠퇴…주문 뚝 끊겨
정부 전통 문화 지원금도 ‘쥐꼬리’
가족 희생 없이는 脈 끊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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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장】
장도를 만드는 기능을 가진 사람。 장도는 조선시대 남녀노소 및 신분과 관계없이 일상적으로 주머니 속에 넣거나 옷고름에 늘 차고 다니던 작은 칼。 칼이라는 실용적 용도에 적합하면서도 동시에 국화문양 등 전통무늬가 정밀하게 아로새겨져 장식품 역할도 했다。

“좋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 무렵입니다. 추석 때면 아버지와 함께 밤을 새워가며 주문 들어온 장도를 만들었어요. 모두 선물용이었죠. 장도는 예로부터 철이 많은 광양의 특산물이었는데 ‘광양 가서 장도 선물 못 받으면 사람 취급 못 받은 것’이라는 얘기까지 있었습니다. 어느 해인가는 광양시에서 장도를 구입하기 위한 예산을 별도로 잡기도 했어요.”

박종군(56) 장도장(粧刀匠·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은 사람들이 흔히 ‘은장도’라고 부르는 ‘장도’를 만드는 장인이다.

아버지 고 박용기(1931~2014) 장도장의 가업을 계승해 장도를 만들고 있으며 두 아들인 박남중(26), 박건영(20) 씨도 각기 이수자와 국비 전수장학생으로 함께 작업에 참여하고 있으니 3대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부인인 정윤숙(54) 씨도 이수자로 박 장도장의 일을 돕고 있다.

박 장도장이 불 앞에 앉아 아버지 일을 돕기 시작한 것은 고교 1학년 재학시절부터다. 벌써 40년이 됐다. 그러나 추석을 맞이하는 그의 심회는 전과 다르다.

“광양은 삼국시대부터 철이 많이 나왔어요. 백운산에서 사철과 사금이 나왔고, 솥가마터도 곳곳에 있었습니다. ‘패도장(佩刀匠)’이라 불리며 장도를 만드는 분도 많았죠. 그러나 생활은 모두 어려웠어요. 저희 집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머니는 붕어빵을 팔아야 했고, 아버지는 비가 새는 공방에서 작업을 하셨어요. 그런 현실을 지켜보며 빨리 커서 아버지 일을 돕겠다고 다짐했고, 실제로 고1 때부터 아버지 공방에서 일했어요.”

박 장도장의 어머니(고 정정례 씨, 2016년 작고)는 “먹고 살기 힘든 일을 배워서 뭣하냐”며 선생님이 되라고 권했지만 박 장도장은 아버지를 돕는 일을 택했다.

작업은 고됐다. 특히 칼날을 담금질하는 작업이 힘겨웠다. 강철을 1000도 이상의 불에 달궈 칼날의 형태를 잡기 위해 계속 반복해 두드려야 했다. 중요한 것은 쇠를 너무 달궈도 안 되고 덜 달궈도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달군 쇠를 불에서 꺼내 망치질을 시작할 때까지 잠시도 한눈팔 틈이 없었다.

이처럼 어려운 담금질 과정을 마치고 날이 만들어졌다고 다 완성된 것도 아니다. 칼자루와 칼집의 모양내기가 기다리고 있다. 보통 목감나무를 주재료로 쓰는데 그야말로 정교하면서도 섬세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칼자루와 칼집을 만드는 재료는 그 외에도 금, 은, 옥, 비취, 밀화, 수정, 금강석, 황동에서부터 상아나 물소뿔, 사슴뿔, 오죽, 대추나무, 회양목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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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모두 177공정에 1만 번의 망치질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을 거쳐 어떤 보석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장도가 탄생한다.

고 박용기 장도장과 박종군 장도장 부자가 생활고 속에서도 계속 작업을 이어간 데는 어머니 고 정정례 씨의 헌신적인 내조 덕도 컸다. 고 박용기 장도장은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새롭게 지정될 당시 아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희 엄마가 진짜 인간문화재다.”

박종군 장도장은 “난 머리에 든 것이 없지만 넌 이론을 갖춰라”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 대학에 진학했다. 동국대 불교미술과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 도검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도 썼다.

박 장도장의 우리 장도에 대한 애정은 한·중·일 칼의 비교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칼은 남을 해치는 군도이며 환도 즉 무기로 발달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칼은 실생활에 요긴하게 쓰이는 도구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반면 선비의 나라인 한국에서 칼은 무기가 아닌,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인 장도로 발전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남을 해치는 칼이 아니라 호신용 칼이며 나쁜 마음을 도려내는 칼이라는 것. 그처럼 깊은 의미를 지녔기에 조선 시대에 중국 황제에게 보내는 공물에도 인삼과 함께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 장도였다고 박 장도장은 강조했다.

그가 대학원에 다닐 무렵은 광양 특산물인 장도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때였다. 주문이 쇄도했고, 광양은장도는 ‘아버지가 딸에게 건네주는 혼수감 1호’였다. 10만 원대 저렴한 제품부터 30만 원을 넘는 100% 수제품 장도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금이나 은, 백옥 등의 재료로 만들어져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장도 주문도 심심찮게 들어왔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경기가 하강 곡선을 그리며 장도에 대한 열기도 시들해졌다. 주문이 끊어지면서 박 장도장은 장도보다는 칠보 공예 장사를 해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추락이었다.

“어려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011년 제가 국가무형문화재 60호 ‘장도장’으로 지정되며 부자가 동시에 ‘장도장’의 명예로운 호칭을 얻게 됐습니다. 그리고 2006년 아버지 고 박용기 장도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전시관 겸 전수장인 광양장도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광양장도박물관(www.jangdo.org)에는 고 박용기 장도장이 14세 때부터 62년 동안 만들어 온 각종 장도와 세계 각국의 칼들이 전시돼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문화재와 지방문화재 및 명장들의 작품도 역시 만날 수 있다. 또한 장도를 만드는 전통적인 공구들과 장도 제작공방(061-762-4853)이 있고, 체험학습 공간도 마련돼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박종군 장도장이 심란한 표정을 짓는 데는 예전만큼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서(그의 표현에 의하면 뚝 끊겼다)만은 아니다. 장도장뿐 아니라 우리 전통문화의 맥이 대부분 끊어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더 크게 작용한다. 여기에는 국가의 지원책도 문제라고 그는 생각한다. 전수장학생이라고 해봤자 매달 고작 26만3000원을 지원받는 것이 전부다. 그나마 이수자에게는 국가보조금이 아예 없고, 조교에게만 매달 66만 원이 나온다. 보유자가 돼도 정부에서 지원하는 금액은 매달 131만7000원이다.

“저만 해도 다행이에요. 저희 두 아들이 가업을 잇는다고 일을 돕고 있고, 아내도 역시 일을 돕고 있습니다. 우리 무형문화재 지원책은 이처럼 가족이 ‘희생’하지 않고는 맥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올해 추석에는 그래서 가족들의 소중함이 더 절실히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