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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 前 기획예산처 장관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지인들이 건강해 보인다 한다
나만의 비결을 털어놓으면…

새벽 5시30분에 숙소를 나서
도산서원까지 왕복 5㎞ 산책

퇴계 선생의 가르침 새기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는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필자의 건강이 그전보다 좋아 보인다고들 말한다. 그러면서 무슨 보약을 먹느냐, 용한 병원에 다니느냐며 비결을 묻곤 한다. 하지만 시골 안동 도산에서 선비수련 일을 10년 동안 하고 있는 필자에게 그런 일들은 머나먼 이야기다. 이따금 성남의 분당 집에 있을 때 말고는 주로 수련원 숙소에서 직원, 수련생들과 식사를 같이 하는 처지에 달리 특식을 먹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젊을 때부터 약골 소리를 듣던 필자가 뒤늦게나마 더 건강했던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생각에서 필자의 도산 생활을 살짝 털어놓으려 한다.

필자의 일과는 새벽 5시에 기상해 5시 30분 산책에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이나 한결같다. 산책 코스는 숙소인 선비수련원에서 나지막한 고개 넘어 도산서원까지 왕복하는 5㎞ 남짓한 산길이다. 한 시간 반가량의 이 새벽 산책길을 필자가 그만둘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운동 효과가 필자 몸에 딱 맞는다. 산책 코스부터 약 100m 높이의 오르막과 이어진 내리막, 그리고 평지 길로 3등분 돼 있어 배합이 적절하다. 계절에 따라 복장을 달리하니 흘리는 땀의 양도 비슷하다. 여기에다 팔다리 근력과 심폐 기능 강화뿐만 아니라, 눈 운동까지 한다. 잘 다져진 오르막 구간에서 전방의 푸르름을 응시하면서 눈동자를 상하, 좌우, 대각선, 원 그리기로 10분가량 운동하면 눈의 피로도 가시고 몸도 한결 상쾌한 느낌이 든다.

맑고 깨끗한 공기도 빼놓을 수 없다. 산책길은 논밭도 전혀 없는 청정한 숲길이다. 안동 시내에서 칠십 리 떨어져 있고, 조그만 공장도 오십 리 안에는 없다. 이러니 어쩌다 지나가는 차량의 매연도 아주 생경하다. 따라서 분당 집에 머물 때면 도산의 공기에 익숙해져 실내에서 자전거 타기로 운동을 대신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도시 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연을 그 한가운데에서 만끽한다. 여름에서 초가을로 접어드는 요즘 숙소를 나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녹색 세계에서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마치 교향악 연주처럼 귓전을 울린다. 며칠 전까지는 매미들이 힘차게 합주를 하더니 어느새 귀뚜라미가 넘겨받고 있다. 겨울에는 일출 전 어둠 속에서 총총한 별을 바라보며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보면 필자 또한 고작해야 대자연의 아주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젖어든다.

이런 환경을 갖춘 곳이 도산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다른 곳과 차이 나는 것은 이 길이 500년 전 퇴계 선생이 거닐고 사색하던 길이라는 점이다. 선생은 이곳에서의 사유를 글과 시에 많이 담아 두었다. 이런 까닭에 이 길은 그저 그런 길이 아니라, 철학자 퇴계의 삶을 배우는 ‘길 위의 도산서당’이나 진배없다.

이 산책길에서 선생이 읊은 여러 수의 시가 있다. 그 가운데 ‘계상에서 산을 넘어 서당에 이르다’(步自溪上踰山至書堂, 보자계상유산지서당)라는 시는 제목부터 필자의 산책 코스와 정확하게 맞아 든다.

‘꽃은 가파른 벼랑에 피어 봄은 고요하고

(花發岩崖春寂寂, 화발암애춘적적)

새가 시내 숲에 울어 물은 졸졸 흐르네

(鳥鳴澗樹水潺潺, 조명간수수잔잔)

우연히 산 뒤에서 제자들을 이끌고

(偶從山後携童冠, 우종산후휴동관)

한가히 산 앞에 와 고반을 묻는다

(閒到山前問考槃, 한도산전문고반)’

퇴계 선생이 제자들을 데리고 지금의 수련원이 자리 잡고 있는 계상에서 걸어서 산을 넘어 도산서당에 도착해 지은 시이다. 여기에서 고반(考槃)은 선생의 은거 장소인 도산서당을 말한다. 성리학적 수양의 최고 경지를 보여주는 시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앞의 두 구절은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고, 뒤의 두 구절은 그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하늘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성리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라고 할까.

산책길에서 이런 시들을 외다 보니 그때마다 선생의 가르침을 곁에 모시고 듣는 듯하다. 우둔하지만 반복하다 보니 차츰 더 의미가 다가오고, 이전보다 마음도 즐거워지고 몸도 가벼워지는 것 같다. 덕분에 자주 복용하던 소화제, 두통약과 멀어진 지 벌써 여러 해다. 속이 이렇게 되니 겉모습도 조금씩 영향을 받아 지인들에게 그런 고마운 덕담을 듣게 된 듯하다.

필자만 이런 은택을 누리는 것이 때로는 아쉽다. 그래서 비록 필자처럼 늘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더라도 기회가 닿는 대로 많은 분이 동참하기를 희망해 본다. 스위스의 알프스 산록에 사는 목장 주인도 그곳에서 얻는 즐거움을 독점하지 않는다. 알프스 여행을 평생 버킷리스트에 담았다가 다녀온 한국인도 그곳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며 남은 생을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주변에서 보곤 한다.

도산도 마찬가지다. 모두 바쁘고 나름대로 정해진 일과가 있을 테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틈을 내어 퇴계 선생의 숨결이 배어 있는 ‘길 위의 도산서당’에 입학해 보기를 권한다.

혼자라도 좋고 여럿이라도 좋고, 책을 옆에 끼어도 좋고 그냥이라도 좋다. 선비수련원에 입소해 뜻이 같은 도반들과 같이 걷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여기에서 배우고 얻은 지혜와 즐거움을 살아가면서 잘 활용한다면 누구든지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염원을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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