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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 前 駐핀란드 대사

사법부의 재판 거래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2일 외교부를 압수수색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대법원과 외교부 간 거래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비리 여부가 문제가 됐던 2012년 1월의 CNK 인터내셔널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제외하고, 외교 사안과 관련해 외교부가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대한민국 수립 이래 처음이며,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외교활동에 관해서는 사법적 판단을 자제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 경향이다. 그 첫 번째 이론적 근거는, 다른 국가나 그 재산에 대해서는 사법 관할권 및 집행권을 면제해 줘야 한다는 ‘국가면제론’이다. 1810년 공해상에서 프랑스군에 나포된 선박이 프랑스 군함으로 개조돼 미국의 필라델피아항에 입항했을 때, 그 선박의 원소유주가 소유권을 주장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미 연방 대법원은 “군함이 우방의 항구에 들어오는 경우… 항구국가의 관할권에서 면제되는 것으로 봄이 공법의 원칙”이라고 판결했다.

이후 등장한 이론이, 법원은 타국이 자국 영역 내에서 행한 행위에 대해서는 설사 그것이 국제법 위반이라 하더라도 사법적 심사를 하지 않는다는 ‘국가행위이론’이다. 이 이론이 적용된 유명한 소송으로 사바티노 사건이 있다. 쿠바의 카스트로 혁명 정부가 미국인 소유 설탕 공장을 무단 국유화한 데 대해, 미 연방 대법원은 “외국 정부가 그 영토 안에서 재산을 수용한 경우 비록 그 수용행위가 국제관습법을 위반했다고 해도… 미국 법원은 그 수용 행위의 효력을 사법적으로 검토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런데도 외교 사안이 쟁송의 대상이 될 경우, 미국 법원은 관계 부처인 국무부의 의견을 묻기도 하고, 국무부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도 한다. 바로 ‘아미쿠스 쿠리에(Amicus Curiae)’라는 제도를 통해서다. 이 말은 라틴어로 ‘법원의 친구(friend of the court)’란 뜻인데, 소송당사자가 아닌 이해관계인으로 하여금 문서로 의견을 개진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이해관계인의 의견이 오히려 법원의 판단을 돕는다는 뜻에서 그렇게 명명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소송 당사자의 동의를 요하는 일반인과 달리, 업무 관련이 있는 국가기관은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아미쿠스 쿠리에 활용이 보편화해 있다. 일례로, 일제시대 강제징용과 관련해, 미 국무부는 2002년 2월 캘리포니아 주(州) 항소법원에 제출한 아미쿠스 쿠리에 의견서를 통해, 캘리포니아 강제노역법이 이러한 문제는 소송보다 정부 간 협의에 의해 해결하라는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정에 따른 미 합중국의 외교정책을 훼손시켰을 뿐만 아니라, 연방정부의 고유 권한인 대외 관계에 관여함으로써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외교 사안과 관련된 소송에서 자제보다는 적극적 관여 입장이다. 외국 행위에 관한 사항은 외교 교섭으로 해결해야지, 사법적으로 개입할 경우 국가 간의 충돌을 일으키고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 미국 대법원의 사바티노 사건 언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외교 관련 사안이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경우에는, 비록 아미쿠스 쿠리에 같은 제도적 장치가 없더라도 외교부는 당연히 이해당사자로서 의견을 적극 개진해야 한다. 이러한 외교부의 당연한 활동까지 사법 거래로 낙인 찍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