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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두 연세대 일반대학원 교수 지역학협동과정(유럽전공)

유럽경제 最强 독일의 비결은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과 실천
市場이 國家보다 합리적 분배

국가는 맞춤형 안전망만 제공
文정부, 분배·재분배 구분 모호
무리한 최저임금은 시장 교란

독일은 유럽경제의 최강자이다. 그 핵심 비결은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과 실천에 있다. 유럽의 많은 국가가 사회복지, 양극화 해소, 자국산업 보호 등의 명분으로 시장에 개입하지만, 독일만큼 국가의 개입 영역을 명확하게 체계화한 나라는 드물다. 즉, 분배는 시장이 맡고, 국가는 재분배를 맡는다.

이러한 독일의 경제 질서는 ‘사회적 시장경제’라고 불리는데, 시장경제를 신봉하며,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반사회적인 분배결과를 재조정하는 것에 국한한다는 보수 기민당의 경제이념이다. 1930년대에 대공황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자유시장 경제체제는 유난히 독일에서 많은 수난을 겪었다. 나치의 전시경제와 동독의 계획경제는 각각 극우와 극좌 정치세력이 추진한 국가개입 경제체제였다. 온건 좌파인 서독의 사민당도 1959년의 전당대회에서 계급투쟁, 국유화, 계획경제 등을 당 강령에서 폐기할 때까지 시장경제를 불신했다.

독일 경제에서 분배는 최대한 시장에 맡긴다. 시장이 국가보다 자원의 합리적 분배를 잘한다는 것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몰락을 통해 입증됐다. 따라서 생산을 위한 물적·인적 자원이 분배되는 과정과 생산에 참여한 자본가와 노동자의 소득이 분배되는 과정 등이 모두 시장에 의해 결정된다. 국가의 개입은 기업의 독과점 행위를 막고 시장경쟁을 활성화하는 역할에 집중된다. 그러므로 분배영역에서 국가의 규제는 최소화되는 것이다.

국가의 개입은 분배가 끝난 후 재분배 과정에서 이뤄진다. 사회적 정의와 연대 차원에서 집 없는 사람에게 공공주택을, 아픈 사람에게 공공의료를,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게 육아수당을 제공하는 등 맞춤형 복지를 제공한다. 독일은 보편적 복지국가가 아니라 사회안전망 국가이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정책을 보면 국가의 개입이 분배와 재분배의 영역 구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정부가 재분배 과정에서 빈곤계층의 부족한 소득을 채워줄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한다면, 소득 분배과정에서 최저임금이 다소 낮게 책정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임금이 높을수록 좋지만, 양극화 해소와 복지증진이라는 재분배 차원에서 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면 시장 교란이라는 부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첫째, 임금상승은 우리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자원이 빈곤하고 시장이 좁은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수출에서 찾았다. 그러한 수출주도 성장의 결과, 우리의 수출의존도는 세계 최고 수준인 40%에 달했다. 소득주도 성장론에 따르면 임금이 올라 수출이 감소하더라도 내수가 확대되기 때문에 기업에는 새로운 대체시장이 생긴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현재 서민의 지출구조를 보면 소득이 늘어나도 집값과 사교육 비용과 같은 블랙홀 속으로 사라질 공산이 크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우리에게 새롭고 거대한 경제 패러다임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것이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처럼 일회성 정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국가개조 사업이 되려면 긴 시간과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무엇보다도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분배과정에서 정부는 개입을 최소화하되, 기업 간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독점기업과 국영기업의 반시장적 행위를 규제하는 데는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술혁신을 장려해야 한다. 기업에 투자 여력이 늘어난다고 해서 투자 의지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기술력을 갖추도록 정부가 투자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혁신경제를 통해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자연히 임금 인상의 여력이 생겨나고, 수출에서도 가격경쟁력보다 제품경쟁력을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민의 소득증대가 집값 폭등과 사교육비 등으로 매몰되지 않도록, 투기적이고 비생산적인 요인을 시장에서 제거하는 경제 건전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분배과정에서 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수록,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경우 시장에 의한 분배로부터 소외된 빈곤계층을 구제할 수 있는 재분배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