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이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에 이의제기서를 제출하고 최저임금 재심의를 요청했다. 고용노동부는 절차대로 이의제기의 타당성을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태도여서 내년도 최저임금안 재심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경총은 23일 고용부에 A4 용지 17장 분량의 사유서와 함께 이의제기서를 제출했다. 경총은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 적용하지 않은 결정 △세계 최상위권의 최저임금 수준과 과도한 영향률이 고려되지 않은 점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점 △2019년 적용 최저임금 인상률 10.9% 산출 근거의 문제점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앞서 중소기업중앙회도 지난 18일 이의제기를 결정한 데 이어, 소상공인연합회 역시 오는 24일 소상공인 단체들과 함께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연대’를 출범하고 고용부에 이의제기를 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제가 시행된 1988년 이후 최저임금안 이의제기 사례는 총 23건(노동계 10건·경영계 13건)이다. 지금까지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진 전례가 없어 이번에도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최임위 관계자는 “고용부로부터 재심의 요청을 받지 않는 이상 지금 최임위가 준비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전례가 없어 재심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신중하게 이의제기를 검토할 계획”이라며 말을 아꼈다.

전문가들은 복수의 사용자단체가 이의제기에 나선 데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여론도 부정적인 만큼, 정부가 전례에 구애받지 않고 신중하게 재심의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린 뒤 영세소상공인이 어렵다니까 전혀 다른 사안인 카드 수수료 부담 완화와 상가임대료 상승 억제를 내세우는 건 본말이 전도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2년간 최저임금을 30% 인상한 예도 과거에 없었던 사례인 만큼, 새로운 상황에는 새로운 관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원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지원본부장은 “이의제기 절차의 구체성이 너무 떨어져 어떤 경우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는 게 문제”라며 “정부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현행 재심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앞으로도 재심의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법상 재심의는 최임위가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구조이고, 심의 과정에 정부 측 입장을 대변하는 공익위원도 참여하는 만큼 번복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며 “독립된 기구에서 재심의를 하는 절차 등 보완할 부분을 고민해볼 때”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