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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비용’ 문제도 생각할 때다

기사입력 | 2018-07-10 11:56

고상두 연세대 일반대학원 교수 지역학협동과정(유럽전공)

美·北 제네바합의‘경수로’비용
韓 70%, 日 20%, 유럽 등 10%
결국 실패하면서 돈만 날린 셈

北核 합의보다 이행 더 어렵고
기간 길수록 파기 가능성 커
외교主權 발휘해 헛돈 막아야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민족의 운명은 외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지정학적으로 유럽 대륙의 중앙에 있는 독일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 동서남북으로 전쟁을 치렀고, 전쟁 예방을 위해 외교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처럼 국가의 운명이 첨예한 시기에, 전쟁과 외교는 국민 보호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서로 다른 수단이다.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제재와 전쟁이라는 벼랑 끝 국면을 지나 대화와 협상이라는 외교적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싱가포르와 평양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1993년에는 양국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났다. 그때와 지금, 회담 장소는 다르지만, 미·북 간의 비핵화 협상은 일관되게 독특한 책임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협상 타결과 비용 부담의 책임이 분리돼 있는 것이다. 제네바 합의는 미·북 간에 타결됐지만, 합의 이행을 위해 설립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에 지어주기로 한 경수로 원자력발전소의 비용은 한국 70%, 일본 20% 그리고 나머지 10%를 유럽연합(EU)과 국제사회가 부담했다. 미국은 발전소 건설 기간에 중유 공급을 맡기로 했다. 하지만 합의가 깨지면서 돈만 날리고, 30% 정도 짓다 만 발전소만 남았다.

최근에 만난 주한 EU대사에게 미·북 간에 비핵화 합의가 이뤄진다면, 북한에 대한 보상을 위해 또다시 EU가 비용을 분담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KEDO에서 일한 경험을 떠올리면서 “노 보이스, 노 페이”(no voice, no pay)라고 답했다. EU는 핵 비확산을 위해 국제적으로 동참하고 동북아 안보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매년 약 2000만 달러를 내는 조건으로 한·미·일에 의해 구성된 KEDO 집행이사회에 들어갔지만, 합의 이행의 성공을 촉구하는 유럽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고, 결국 실패한 프로젝트에 돈만 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제네바의 교훈은 합의보다 이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은 합의가 깨진 것에 대해 서로 책임 공방을 벌였다. 미국은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을 농축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북한은 미국이 중유 공급을 중단하는 등 합의를 파기하는 행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제네바 사례가 보여주듯이 신뢰와 진정성이 부족하면 합의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특히, 대규모 계약은 긴 이행 과정에서 파기에 필요한 빌미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처럼 국가 간의 합의는 쉽게 깨질 수 있고, 그러한 행위를 처벌하려면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한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국제적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약한 북한을 비핵화시키는 방법으로 이제 외교적 수단만 남았다. 미국은 대북 군사적 압박 카드를 접었고,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제재 의지는 느슨해져서 다시 다그치기 어려워지고 있다. 협상을 통한 평화적 비핵화는 본질적으로 경제적 보상과의 교환 프로젝트다. 제네바 합의는 이란 핵 합의보다 더 큰 보상을 약속해줬다. 경수로 발전소 2기의 건설비만 당시 46억 달러(약 5조 원)가 책정됐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 최소한 제네바 합의 수준의 보상을 요구했다. 핵 개발 초기 단계에 불과했던 그때와 달리 이제 북한은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할 것이고, 한국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비용을 부담하게 될 미·북 협상 테이블에 한국이 없다. 우리 정부 관계자가 최소한 1명은 참석해야 한다. 그리하여 비핵화 합의가 표류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타결될 수 있도록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우리 국민의 세금이 헛되이 쓰이지 않는 성공적인 비핵화 합의가 도출되도록 해야 한다. 즉, 비핵화 시간표가 길어질수록 합의 이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고 매몰 비용도 커지므로, 우리 정부 대표가 이러한 사태를 막는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

구한말 이후 우리 민족의 운명은 타국의 외교에 의해 종종 결정됐다. 가쓰라-태프트 회담, 얄타회담, 정전회담 등과 같은 역사적 기억 때문에 아마 우리 국민의 가슴에 한반도 운전자론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핵 문제의 해결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이라는 안일한 시각을 가졌다. 이러한 시각을 버리고, 우리나라의 안보와 우리 국민의 혈세가 협상 카드로 사용되는 회담에 우리 정부도 당사자임을 주장하고 참여하는 외교 주권을 발휘하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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