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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몸이 내게 말을 걸어와” 사랑에 빠진 딸… 시기하는 엄마의 狂氣

기사입력 | 2018-07-10 11:00


■ 광란의 사랑

젊은 남녀의 사랑은 금방 쏟아낸 피와 같다. 뜨겁고, 끈적하며 섬찟할 정도로 강렬하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90년 작 ‘광란의 사랑’(사진)에서의 세일러(니컬러스 케이지)와 룰라(로라 던)의 사랑이 그러하다.

세일러는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룰라를 열렬히 사랑한다. 룰라 역시 변변한 직업도 없는 한량인 세일러를 목숨처럼 여긴다. 문제는 룰라의 엄마 마리에타(다이앤 래드)가 세일러를 증오한다는 사실이다. 마리에타는 세일러를 유혹했다가 거절당한 이후 앙심을 품고 어떤 수단을 써서든 룰라를 세일러로부터 떨어뜨리려 이를 갈고 있다.

줄거리의 초반을 보면 ‘졸업’의 로빈슨 부인과 벤의 비틀린 관계가 떠오르기도 한다. 벤에게 차인(?) 후 딸을 그에게서 떼어내려고 정략결혼을 시키는 설정이 ‘광란의 사랑’의 관계도와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린치가 아닌가. 그는 ‘졸업’의 연출자 마이크 니컬스의 귀엽고 서정적인 행보와 정반대로 광기와 에로티시즘을 택했다.

마리에타는 자신의 정부와 살기 위해 남편을 태워 죽인 과거가 있다. 그는 이번에도 킬러를 고용해 세일러를 죽이려 하지만 세일러가 오히려 킬러를 죽이고 과실치사로 1년 반을 복역하게 된다. 출소하는 날 룰라는 세일러가 가장 좋아하는 뱀 가죽 재킷을 싸 들고 집을 떠난다. 감옥 앞에서 재회한 남녀는 밑도 끝도 없는 여정을 시작한다. 룰라의 빈티지 차를 몰고 하염없이 남부로 향하는 두 사람은 주가 바뀔 때마다 사랑을 나눈다.

쓰러져가는 모텔 침대 위에서 룰라는 세일러에게 말한다. “네 몸은 내 몸을 위해 제작된 것 같아. 너무 잘 맞아. 네가 내 몸 안에 들어와 있을 때, 꼭 그게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아. 넌 정작 말을 하고 있지 않은데 말이지”. 이 영화 최고 명대사다. 린치식 더티 토크(섹스를 주제로 한 농담)이자 애틋한 사랑 고백이기도 하다. 룰라를 ‘피넛’(땅콩)이라고 부르는 세일러는 온종일 작은 입으로 섹스토크를 재잘대는 룰라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그렇게 이들은 낡은 침대를 떠날 줄 모른다.

마리에타는 룰라가 가출했다는 사실을 알고 연인인 조니(해리 딘 스탠턴)에게 세일러를 죽여달라고 청한다. 세일러를 추적하기 위해 떠났지만 정작 조니가 주저하자 마리에타는 전 남편을 태워 죽이는 데 공모했던 예전 연인 산토스에게 연락해 세일러를 죽이라고 한다. 세일러와 룰라는 이름 없는 황량한 마을로 다니지만 산토스는 귀신같이 그들을 찾아낸다. 결국 산토스의 작전으로 세일러는 강도사건에 휘말려 또다시 감옥으로 가게 된다. 세일러를 잃은 룰라는 절망한다. 하지만 남부 전역을 종횡하며 낮이고 밤이고 사랑을 나눈 이들에게 분신(分身)이 생긴다. 몇 년이 지나 룰라는 아들과 함께 출옥하는 세일러를 마중 간다. 그러나 두 번이나 마리에타의 악덕에 의해 감옥에 가게 된 세일러는 룰라와 아들을 마주하는 순간 작아진다. 예전처럼 보자마자 키스를 나누고 룰라의 체취를 만끽하지만 자신이 없어진 세일러는 이들을 두고 차에서 내린다.

‘로스트 하이웨이’(1997),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등 린치 감독 작품은 ‘문제작’이나 ‘컬트적 작품’ 등의 수식어로 강조돼왔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장르적 문법을 따르지 않으며 장르의 보편성을 기준으로 할 만한 요소조차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린치 감독의 초기작 ‘광란의 사랑’은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유일하게 전통적인 로맨스 서사를 따르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죽고 못사는 젊은 남녀를 시기하는 마녀, 도주하는 연인, 그리고 이들을 추적하는 마녀의 하수인 등 설정과 플롯은 매우 동화적이면서도 낭만적이다. 더욱이 룰라와 아들을 뒤로하고 쓸쓸히 떠났던 세일러가 착한 마녀의 환상을 보고 돌아와 룰라에게 ‘러브 미 텐더’를 불러주는 엔딩은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엔딩이 아닌가 싶다.

영화평론가

김효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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