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정창무 서울대 공과대 교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

저출산, 고령화시대에 인구절벽이 현실화하면서 ‘지방 소멸’이란 말이 빈번하다. 실제로 최근 지방 중소도시들은 인구 감소 경향이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앞으로 30년 뒤면 지역에 사는 사람이 없어 소멸될 도시가 전국 시·군의 3분의 1 이상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도시 재생 뉴딜’을 비롯해 ‘혁신도시 시즌 2’ 등 지역의 자립적 성장 기반 마련에 애쓰고 있다. 국토 정책의 패러다임도 양적 균형발전 정책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진단과 처방이 제대로 됐는지에 있다.

인구가 준다는 것은 그 지역이 사람이 살기 어렵다는 것이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상상력을 발휘해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조선 시대에 30년간 조선 8도를 떠돌며 세계적인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를 쓴 청담 이중환 선생의 시각을 빌려 보자.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중환 선생의 ‘택리지’ 중 ‘복거총론(卜居總論)’에 따르면,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풍수적 길지(吉地)로, 생업에 유리하고 인심이 좋으며,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어야 한다. 선생은 곳간에서 인심이 나고 물자가 부족한 곳은 인심이 거칠어지기에,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성 높은 토지와 편리한 교통으로 ‘생업에 유리한 곳’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중환 선생의 관점에서 보면 소멸하는 지방은 생업에 불리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농사가 주된 산업이던 시대에는 비옥한 땅이 있는 곳이 생업에 유리한 곳이었다. 그러나 산업 구조가 바뀐 지금은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식 정보를 생산하는 두뇌 밀집 지역이 바로 생업에 유리한 곳이다. 따라서 지방 소멸에 대응하려면 고급 두뇌들을 모으기 위한 처방이 필요하다.

부(富)의 창출이 지식 정보에 있으므로 혁신거점을 중심으로 고급 두뇌를 집적시키고 네트워크를 촘촘히 연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혁신 인재들이 모여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제조자 공간(maker space)이나 협업 공간을 구축하고 여기서 생산된 제품의 거래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 첫 번째다. 네트워크의 확충은 전자 공간상에서도 필요하지만, 물리적 공간에서도 필요하다. 국내외 혁신거점 간 교류와 소통이 쉽도록 대규모 통신망과 교통망을 구축해야 한다.

지역의 고급 인재 풀을 확대할 수 있도록 쇠퇴 지역의 해고된 근로자를 대상으로 첨단 기술 교육도 시행해야 한다. 노동생산성이 낮은 구시가지 주민들 역시 일기일능(一技一能) 교육을 통해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 지역의 지적 부존자원의 확대에 일조해야 한다. 이들을 돕기 위해 곳곳에 제조자 공간을 확충하고, 시제품을 팔 수 있는 킥스타터(kick starter)와 같은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중국 알리바바대학과 같이, 농민들도 정보기술(IT) 교육을 통해 홈쇼핑 등에 작물을 손쉽게 팔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역 경쟁력이 보다 강화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흩어져 살아서는 안 된다. 외딴곳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을 위해 백 원 택시 제도를 운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 할머니를 생활 인프라가 집중돼 있는 곳으로 이주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다. 식구가 줄면 집을 줄이듯, 인구가 줄면 도시를 줄여야 한다. 사람들을 모아 지적 생산성 향상이 쉽도록 하고 도시 관리 비용을 절약해 지역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소멸하는 지방을 살기 복된 곳으로 만드는 한반도 ‘복거총론’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