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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0집 낸 밴드 ‘자우림’

“해산 위기 넘기며 20년 버텨
밴드음악 이제야 알 것같아”

“우리는 게으른 모범생이에요.”

지난해 데뷔 20년을 맞은 밴드 자우림(이선규·김진만·김윤아)은 22일 정규앨범 10집 ‘자우림’을 내며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밴드가 뿌리내리기에 척박한 풍토인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여성 보컬을 앞세운 밴드가 2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밴드로서 실력과 자존심을 지키는 동시에 대중과 소통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앨범명을 밴드명인 ‘자우림’이라 명명한 것도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자부의 표시는 아니었을까.

“지난해 데뷔 20주년이었는데, 조용필 선배님이 올해 50주년이라는 것을 알고 ‘나대지 말자’고 생각했죠.(웃음) 정규 앨범 10장 정도 내니까 이제야 밴드 음악에 대해 감을 잡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떤 영역이든 20년 정도는 해봐야 아는 것 같아요.”(이선규)

이번 앨범은 단편소설 같다. 수록곡마다 자우림의 목소리를 담뿍 담았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청년과 현실. 그동안 ‘일탈’ ‘샤이닝’과 같은 곡에서 흔들리는 이들의 모습을 그렸던 자우림은 이번 앨범에도 뉴스를 통해 볼 수 있는 이 사회의 단면을 표현했다. 가사와 함께 사운드도 음미해야 한다. 음악평론가 배순탁 씨는 “꼭 괜찮은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감상하라”고 권한다.

“자우림은 곡 작업을 할 때 개인적인 이야기는 피하려 해요. 행복해지길 꿈꾸며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청년이나 누군가를 그리죠. 사운드 면에서는 이제 ‘3기’에 접어들었죠. 3집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막 만들었다면, 4∼8집은 즉흥적인 에너지를 내며 라이브를 강조했어요. 그러다 9집부터는 미래지향적인 자우림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스튜디오 앨범’에 집중하고 있죠. 색으로 표현하자면 짙은 녹색이나 붉은색이에요. 이런 사운드는 국내에서 자우림만 낼 수 있을 거예요.”(김윤아)

자우림의 곡은 다채롭다. 톡톡 튀다가도 한없이 가라앉는다. 멤버들의 음악적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함께 작업하며 누군가 몽니를 부릴 법도 한데 20년간 불화 한번 없었다. 상대방이 권하는 음악에 동조하지 않아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한발씩 물러서면 융화되고 화합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서로 의견 차이가 있으면 다양한 버전으로 녹음한 후 다 같이 들어봐요. 그러면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죠. 믹싱할 때도 서로 ‘내 소리가 너무 큰가’라며 자기 파트 소리를 더 줄여요. 셋의 음악적 취향이 같았다면 앨범이 재미가 없었을 거예요. 이렇게 함께 해오면서 서로 조금씩 닮아간 것 같아요.”(김진만)

자우림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지난 2011년 8집 앨범을 녹음하며 김윤아에게 안면마비 증세가 왔다.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을 것 같았다. ‘해체 위기’는 아니었고 김윤아의 ‘은퇴 위기’였다. 하지만 다행히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지난해 말에는 드러머 구태훈이 개인적 사정으로 팀에서 하차했다. 그래서 10집 앨범은 ‘3인조 자우림’의 첫 앨범이기도 하다.

“(김)윤아가 아파서 강제로 해산될 뻔했어요. 가까스로 믹싱 마치고 윤아가 쓰러졌는데, 출고된 CD를 들고 병실에 가서 윤아에게 전달했어요. 의사도 호전을 장담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지막 앨범이겠구나’ ‘이제 뭐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죠.”(김진만)

자우림 이후 여성 보컬을 앞세운 밴드가 여럿 탄생됐다. 하지만 지금껏 명맥을 유지하는 밴드는 자우림뿐이다. 앞으로 자우림은 또 어떤 20년을 열까.

“밴드가 오래 가기 힘든 부분이 있어요. 저희는 운이 좋았죠. 후배 양성요? 제가 잘하는 말이 있는데, ‘나나 잘하자’예요. 아직 우리 앞가림도 못하고 있기에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김윤아)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