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는 멀쩡한 월성 1호기를 폐쇄하고, 신규 원전 4기 건설을 없던 일로 돌렸다. 이로 인한 국가적 손실도 뼈아픈데, 문 정부는 그 비용을 국민에게 떠넘기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월성 1호기에는 수명 연장을 위한 수리비 등으로 7200여억 원이, 백지화한 신규 원전엔 937억 원이 투입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1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 조정 점검회의에서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탈원전 비용에 쓰는 것을 우선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력산업기금은 국민이 내는 전기요금에서 3.7%를 떼어 조성한 것으로, 현 법령에는 원전 폐기 비용으로 쓰라는 근거가 없다. 문 정부의 독단이 낳은 정책 후유증을 무마하려고 국민 호주머니를 터는 것과 다름없다.

산업부는 심야 요금 할인을 줄이는 식으로 산업용 전기료 인상도 검토하고 있다. 심야시간 요금은 피크타임보다 훨씬 싸 기업 전기 사용량의 절반이 여기에 몰려 있다. 할인 폭이 10%만 줄어도 전기료는 3.2% 인상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늘어나는 기업 부담이 5000억 원에 이른다. 최저임금·근로시간 폭탄에 이어 전기료까지 오르면 산업경쟁력 추락은 불가피하다. 문 정부는 임기 내 전기료 인상은 없다고 장담했지만, 허언으로 드러나고 있다. 기업 전기료가 늘어난 만큼 제품 가격, 곧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탈원전 총대를 멘 한국수력원자력의 처신은 더 가관이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지난해 6월 한수원은 500억 원 보상 한도의 ‘임원 배상 책임보험’에 들었다. 나중에 불거질 책임론에 대비한 것으로 비겁하기 짝이 없다. 탈원전 정책에 문제가 많다고 만천하에 고백한 셈이다. 한수원은 월성 1호기를 1년 세워놓고는 ‘57% 가동률로 경제성이 없다’며 폐쇄를 결정했다. 2015년 가동률은 95%를 넘었다. 결론을 미리 내놓고 거짓으로 짜맞추기를 한 셈이다. 원전은 없애면서 원자력 전공자 신규 채용 비중을 13%에서 30%로 늘리겠다는 것도 상식으론 납득할 수 없다.

무리한 탈원전 1년 동안 곳곳에서 후유증이 터져 나오고, 이를 덮으려는 무리수가 뒤따르면서 요지경이 따로 없다. 더 큰 파국을 낳기 전에 한시바삐 비정상을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