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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경희대 한방신경정신과 교수 火病 전문가

감정노동자 늘어 700만 시대
실제 감정과 다른 감정 표현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은 행복
우리 사회 진정으로 행복할까

그들이 업무에 자긍심 느껴야
진심 어린 마음 받을 수 있어

“슬퍼도 슬픈 게 아냐, 기뻐도 기쁜 게 아냐.” “울어도 우는 게 아냐, 웃어도 웃는 게 아냐!” 화병클리닉에서 보는 사례 가운데 치료가 힘든 사례의 하나, 화병을 직업병처럼 가지고 있는 감정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감정노동이란 용어는 30년도 더 지난 1983년,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의 ‘관리된 마음, 인감 감정의 상품화’라는 책에서 처음 제기됐다. 혹실드에 따르면,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압하거나 실제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이 감정노동이다. 게다가 말투나 표정, 몸짓 등 드러나는 감정 표현을 직무의 한 부분으로 연기하기까지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가 서비스업 중심으로 변하면서 감정노동 종사자가 늘어 700만 명에 이르렀다. 이미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이 넘는다고 하는데, 다른 직종군에 비해 유달리 자살률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감정노동자의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가정에서도 위기상황이다.

감정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해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으로, 자신의 생리적 양상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생리적 양상은 기(氣)의 변화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화가 났을 때는 기가 치받아 오르고, 슬프면 기운이 처지고, 우울하면 막히고, 기쁘면 풀어지는 현상은 감정에 따른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자연스러운 반응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온다. 그러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지로 다른 감정으로 바꾼다면 자연스러운 기의 흐름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 분노를 억제하면서 감정을 억누르는 경우, 슬퍼도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 지으며 기쁜 감정으로 표현하는 경우, 때로는 과도하게 웃는 경우처럼 자신과 다른 감정을 어쩔 수 없이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겉감정과 속감정의 불균형이 일어난다.

감정노동자들의 어려움은, 상대방의 감정은 그대로 받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은 드러내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감정노동은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 발생하며, 이때 생기는 감정적 부조화는 좌절이나 분노, 적대감, 감정적 소진과 같은 스트레스 반응으로 나타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존감과 가치관이 손상된다는 점이다. 심하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적응장애, 우울증 같은 정신장애와 자살까지 갈 수도 있다.

화병클리닉에서 자주 만나는, 시어머니를 상대하는 며느리와 감정노동자는 비슷하다. 시어머니의 이해 못 할 어떤 행동도 그저 받아들여야 가족이 행복하다는 말을 남편은 물론 자녀들로부터도 듣게 된다.

“어머니니까 어쩔 수 없잖아? 당신 하나만 참고 견디면 온 가족이 모두 행복해지잖아.” 감정노동자 역시 직장에서 이 같은 주문을 받는다. “고객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네가 미소를 지어야 고객들이 즐겁게 보낼 수 있잖아.”

하지만 며느리와 감정노동자가 행복하지 않은데 다른 가족, 고객이 진심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느 한쪽의 희생을 통해 가족이, 사회가 행복할 수 있을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더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에게 불행을 강요할 순 없지 않은가.

다행스러운 것은, 감정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들이 나오고 있고, 이에 근거한 가이드라인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감정노동자 사례 연구에서는 수면의 질과 자기조절 능력을 높이는 것이 감정노동으로 인한 인체 에너지 소진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제시했다. 올해 대한스트레스학회의 주제 역시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였고, 감정노동자가 힘들어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소진된 상태에서 원래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감정이 회복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 우선은 현장에서 벗어나 휴식할 필요가 있다.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안정된 원래의 리듬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진정성이 있는 관계를 맺어 지원한다.

→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하고, 누군가가 이런 감정에 대해 경청하고 공감하며 위로해 줘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힘들었음을 인정한다. 그러한 감정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확인해 준다.

△자신이 소중한 사람임을 확인해준다.

→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소중한 존재임을 인지하고 나를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긴다.

△자신의 일과 역할에 의미를 부여한다.

→ 자존감이 높아야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올라간다.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가치에 부합한 활동을 늘린다.

이 네 가지 원칙은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주부 화병 환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어머니를 모시는 주부에게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마치 월급을 받는 것 같은 보상, 그리고 가족을 위한 주부의 노력에 대한 감사와 격려를 전한다.

우리는 감정노동자에게 진심을 바란다. 그들로부터 진심으로 하는 미소·행동·마음을 받고 싶다. 이러한 진심은 감정노동자가 스스로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가능하다. 그래야 자신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자신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업무에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감정노동자가 이러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그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진심을 다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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