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정선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교수 가수

1980년대 ‘워크맨’ 등장
혼자 듣는 음악 개인 단절

지금은 어딜 가도 이어폰
알게 모르게 청력 나빠져

주위 시끄러워 이어폰 집착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고

아마, 그 시작은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일본 소니사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워크맨’부터일 것이다. 스피커가 아닌, 귀에다 꽂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 워크맨의 등장으로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듣게 된 시점이.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혼자서 마음대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젊은 친구들이 먼저 사용하기 시작했고, 더러는 워크맨 때문에 젊은 세대부터 개인주의가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50년대 초에 일명 ‘도넛 판’이라고 부르는 7인치짜리 싱글 레코드가 나오고, 조금 뒤에 배터리로 작동하는 휴대용 전축이 나왔다. 그러자 어른들 눈치 보지 않고 따로 모여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된 젊은이들은 신이 났다. 어른들이 싫어하는 음악, 즉 로큰롤 음악은 그 바람을 타고 급속히 확산됐고…. 결국, 휴대용 전축은 음악적 취향이 서로 다른 세대 간에 단절을 만들면서 팝음악의 장르별 역사도 바꿔 놓았는데….

이어폰으로 혼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워크맨의 등장은 세대 간의 단절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의 단절을 가져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혼자만의 음악을 듣는 데서 출발했지만, 음악뿐이 아니라 사고방식, 행동까지도 제각기 혼자 하는 독립된 개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워크맨으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누구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고, 혼자서 음악을 듣는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가끔 연인들끼리 공원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끼고 같은 음악을 듣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대개는 혼자서 음악을 즐기고 있다.

아파트 위아래 층에 눈치가 보여 큰 볼륨의 스피커로 집에서 음악을 제대로 들어 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가끔은 방문과 창문을 꼭꼭 닫고 작은 스피커로 음악을 듣곤 했는데…, 아내가 방문을 닫고 있는 걸 싫어해서 하는 수 없이 방문을 열어놓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곤 한다.

그런데 한참 지나면 귓속이 간지러워져서, 차라리 밀폐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훨씬 더 몰두할 수 있다. 하지만 문득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어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이 느껴지면 혼자만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소외감으로 갑자기 무서워진다. 그래서 헤드폰은 음악작업을 할 때 잠깐씩만 사용하고, 음질이 맘에 들지 않아도 대개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한적한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나는 누구하고도 눈을 맞추지 못하고 그저 앉아서 두리번거리다가 내리게 된다. 모두 이어폰을 끼고 휴대전화를 켜고 무언가를 하고 있어서 그것 외에는 같은 객실에 있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다. 가만히 보면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음악을 듣거나 외국어 회화공부를 하고 있고, 눈을 뜨고 액정에 시선이 빠져 있는 사람들은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한다. 드물게 이어폰을 끼지 않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사람은 메시지를 보내거나 SNS 대화를 하거나 뉴스 등을 검색하고 있는 게다.

지하철보다는 덜하지만, 길에서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니는 젊은 친구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혹시 주변의 소리를 듣지 못해서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이어폰을 통해 주변의 소음과 상관없이 본인만의 세계로 빠져들어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커다란 매력이겠지만…. 그러는 사이에 알게 모르게 청력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본인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청력이 약해지고 있는 건, 주위의 소음이 많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순전히 이어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습관처럼 채널을 돌리다가 깜짝 놀라 볼륨을 줄일 정도로 시끄럽고 자극적인 소리로 넘쳐나고 있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큰 소리에 익숙해져 가는 나 자신이 새삼스러울 때가 있다. 자꾸만 자극을 찾아서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지만….

드라마를 봐도 서로가 목청을 높여 싸우기가 다반사이고, 누가 더 높은 음까지 올라가고 큰 소리를 내느냐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는 것 같은 TV의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차분하고 조용한 노래가 설 자리는 더 이상 없는 것 같다. 아니, 어지간한 작은 소리는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들리지 않으니까 듣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억지로 들어라∼ 들어라∼ 하고 볼륨을 높여서 방송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돋보이는 사회. 싸울 때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속설이 통하는 사회, 한두 목소리로는 모자라서 떼로 힘을 합쳐서 소리를 내야만 자기들 의견이 전달될 것 같은 분위기의 사회. 실제로 큰 목소리가 이기고 있는 걸까 싶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주위가 시끄러워져서 오히려 더 이어폰을 끼고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위가 시끄러우면 이어폰의 볼륨을 더 키워서 들을 테고, 그러다가 청력이 더 나빠지고, 안 들리니까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래서 더 시끄러워지고, 그러다가 이어폰의 음량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쯤 되면 세상이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있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청력을 약하게 만드는 이어폰임이 확실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가끔 수업시간에 일부러 작은 소리로 강의를 해 보면, 알아듣지 못 하는 학생이 자꾸만 늘어난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강의실을 나서는 학생들을 볼 때면 다음엔 마이크를 사용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나는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지 크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