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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부부에 출산휴가, 80세 넘으면 免賤… 백성 삶의 질 향상 善政

기사입력 | 2018-05-16 10:48


역사연구자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그중 하나가 ‘토각(兎角)논쟁’, 즉 토끼의 뿔이 길다느니 짧다느니 다투는 것이다. 그 주장이 제아무리 그럴듯하고 심지어 교훈까지 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없는 사실에 기반해 있다면 그것은 한낱 모래 위에 집짓기일 뿐이다.

이영훈 교수의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라는 책이 출간된 후,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는 전국 각지에서 걸려오는 전화로 바쁘다. 울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세종이 노비 폭증의 원흉이라는데 사실이냐?”며 학생들에게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국사학자들은 “역사 망발에 절대 말려들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럼에도 실록 기록을 확인해 드리겠다는 그 교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연구소 홈페이지(allthatsejong.com)에 세 꼭지의 반론 영상을 이미 올렸다.

이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흔히 세종을 성군이라 하는데, 이는 양반 사대부들의 성군일 뿐 일반 백성들에게는 성군이 아니었다. 그 근거는 두 가지다. ①세종이 노비의 인권과 삶의 질을 크게 악화시키는 법을 만들었고, ②그 법으로 인해 세종시대 노비의 처지가 크게 악화됐으며, 세종 사후 노비 인구가 크게 확장되었다.

과연 그게 사실일까? ①과 관련된 첫 번째 법은 ‘주인고소금지법’, 즉 종이 주인을 고발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말고 즉시 목을 베도록 한다는 법이다. 이 법에 대해 이 교수는 1420년(세종 2년) 9월 13일에 세종이 동의해 통과되었다고 하는데(위의 책, 53쪽), 사실이 아니다. 이날 예조판서 허조는 당태종의 말을 근거로 주인고소금지법을 거론했다. 하지만 정작 입법 제안 내용에는 부민(속관, 아전, 백성)이 수령(품관, 수령, 감사)의 죄를 고발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수령고소금지법)만이 들어갔다.

주인고소금지법은 그로부터, 즉 수령고소금지법이 통과된 지 2년 후인 1422년 2월 3일에야 제정되었다. 입법자는 역시 허조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날의 실록 기록인데, 처음 입법이 제안되었을 때(1420년 9월) 세종은 여러 신하에게 의논하게 했다(議之). 이 자리에서 정승인 유정현·박은 등은 그 법을 심히 그르게 여겨 그렇게 하면 “백성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반대 이유였다. 그러자 허조는 당시 태상왕이던 태종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윤허하지 않으시면 죽어도 눈을 못 감는다’면서 울먹이는 허조에게 태종이 감동되어 “즉시 통과시켰다(卽從之)”는 게 실록 기록이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그를 둘러싼 어떠한 찬반논쟁도 없었고, 세종은 신하들의 과격한 요구를 순순히 수용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위의 책, 54쪽).

다시 말해서, 양반 지배층이 자기들의 이익 내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노비 관련 법안을 일치단결해 제정한 게 아니었다. 또 허조의 입법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세종이 아닌 태종이라는 게 실록 기록이다. 따라서 이 법의 책임을 묻자면 결정권을 쥐고 입법을 허락했던 태종, 즉 이 교수가 ‘개혁적인 군주로서, 노비의 권리를 지키고자 노력했다’던 태종에게 지워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세종시대 노비의 생활 수준이 정말 최악이었을까? 이 교수는 노비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세종이 취한 제도적 조치, 즉 노비 부부에게 지금보다 더 파격적인 출산 및 산간 휴가를 주고, 80세가 넘은 노인들은 모두 천인 신분에서 벗어나게 한 조치 등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노비제도와 관련한 이 교수의 주장에는 결정적 오류가 두 가지 더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살피기로 한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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