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행복 그대의 흐드러짐에 희망을 찾았고 자유를 얻었다. 2018년 작. 김영화 화백

본격 골프 시즌이 도래하면서 코스 여기저기서 탄식처럼 쏟아지는 말이 있다. “아, 저 앞 팀 진짜 느리네. 미치겠다”는 말이다. 한국 골퍼들 성격이 원래 급한 것도 있지만, 동반 플레이어 중 늑장 플레이어가 있으면 진행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다. 모처럼 기분전환 겸 필드를 찾았다가 늑장 골퍼 때문에 오히려 기분이 상한다면 좀 억울할 일이다.

얼마 전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ANA인스피레이션에서 스웨덴의 페르닐라 린드베리가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그의 늑장 플레이로 많은 시청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린드베리는 8차 연장에서 2분에 걸친 시간을 소요한 끝에 8m 퍼팅에 성공했다. 이후 박인비의 퍼팅은 빗나갔고 린드베리가 우승했다.

골프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룰과 에티켓을 중시한다. 나로 인해 동반플레이어가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 골프 최대의 적은 ‘슬로 플레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습관을 잘 들이는 것이 좋다. 슬로 플레이는 뒤 팀의 리듬을 깨고 동반 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슬로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루틴 탓에 심리적 불안이 찾아오면 연습스윙과 왜글, 그리고 그린 읽기 등으로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 동반자와 뒤 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본인의 루틴은 찾을지 모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리듬이 깨지기 마련이다.

미국 골프닷컴은 지난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50명을 대상으로 ‘가장 플레이가 느린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1위는 벤 크레인(미국)이었고 2위는 케빈나(나상욱), 3위는 제이슨 데이(호주), 4위는 조던 스피스(미국)였다. 이후 이들의 플레이는 많이 개선됐다. 반면에 가장 빠른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1위는 ‘바로 나’였다. 프로마저 자신은 느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골프다. 나의 플레이를 나 스스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동반자의 의견을 참고해야 한다. ‘윌리 파크’는 골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기품을 꼽았다. 린드베리는 우승은 했지만 골퍼로서의 기품은 잃었다. 순서가 되면 티샷은 신속하게 하고, 클럽은 카트가 있는 곳으로 마중나가 받아오며, 여러 번의 스윙과 왜글은 딱 한 번으로 고쳐야 한다. 골프 볼 마크는 내가 하고, 그린에서 수없이 왔다갔다 하는 것과 오랜 어드레스 자세 역시 바꿔야 한다.

“앞 팀은 매우 늦고, 뒤 팀은 성급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분명 우리 동반자 중 슬로 플레이어가 있는 것이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