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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교수 가수

아날로그 느낌 살리기 위해
일부러 ‘잡음’ 넣는 건 잘못

녹음된 재즈 피아니스트 앨범
연주하는 현장의 소리 ‘리얼’

예전엔 LP 틀며 라디오 방송
“음반 상태 안 좋아서” 사과도

음악을 직업으로 하다 보니 모든 종류의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특히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는 새로 나온 CD 음반에 대한 평을 열심히 보고 있다. 최근에 부쩍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음반 소개 글에서 아날로그의 맛을 살리기 위해 지지직∼ 하는 잡음을 일부러 넣었다는 설명을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친구들이 정말 아날로그 음반의 소리를 들어보고 이런 말을 하나 하고 갸웃하게 된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서 아날로그 음악 소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아날로그라는 단어가 그럴듯하게 낭만적으로 다가오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소리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지직∼ 하는 잡음을 아날로그 음악의 대표적인 소리라고 표현하는 것은 LP 음반의 소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먼지 묻은 손으로 레코드판을 잡아서 소리 홈 사이에 먼지 등 이물질이 끼었거나 실수로 스크래치가 생겼거나, 하도 많이 사용해서 트랙의 홈이 마모되었거나, 바늘 끝부분이 부러져서 레코드판이 긁히는 소리가 나거나…, 아니면 흔히 ‘빽판’이라고 하는 해적판처럼 조악한 시설에서 만든 불량 판이거나 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잡음이 날 수밖에 없지만…, 잘 만들어진 새 LP에서는 아무런 잡음이 나지 않는다.

유일한 소리가 있다면 바늘이 레코드판에 닿았을 때 웅∼ 하고 전기신호가 들어오는 작은 소리 정도인데 그건 잡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음반도 당연히 잡음이 없었고, 특히 원판이라고 소중히 여기던 수입 LP의 경우에는 더더욱 아무런 잡음이 없었다.

아주 섬세하게 녹음된 재즈 피아니스트의 앨범을 듣고 있자면 의자에서 나는 소리, 페달을 밟았다 떼는 소리, 연주 속도에 따라 느리게, 또는 가쁘게 몰아쉬는 숨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등 피아노를 연주하는 현장의 소리들이 리얼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그것은 잡음과는 다른 차원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장소 중에 차 한 잔 값으로 하루 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악 감상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음반을 틀어주는 디스크자키(DJ)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LP 레코드판에 분무기로 약하게 물을 뿌리든지, 깨끗한 물수건으로 닦아서 잡음이 나지 않게 잘 관리하는 것이었다. 어느 비 오는 날, 감상실 스피커 근처에 앉아 차를 마시다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 끝에 갑자기 포르테시모(ff)로 튀어나오는 음악 소리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찻잔을 놓친 경험이 있다. 그 뒤로는 절대로 스피커 앞에 앉지 않았는데, 그렇게 음악 소리가 나오기 전에 다른 소리(잡음)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이야 방송국 자료실에 보관하고 있는 음악 파일을 컴퓨터로 가져와서 들려주며 라디오 방송을 하지만, 예전에는 LP를 직접 틀며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어쩌다가 사전에 확인하지 못하고 상태가 나쁜 레코드판을 실수로 틀게 되어 지지직∼ 잡음이(한번 잡음이 난 음반은 음악이 끝날 때까지 계속 지직거렸다) 생방송으로 나가기라도 하면, 음악이 끝난 뒤에 “음반 상태가 안 좋아서 잡음이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반드시 사과 멘트를 하였다. 그리고 그런 음반은 다른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때에 주의하도록 표시를 하였다.

새로 나온 LP판의 겉 비닐을 뜯고 (그 소리마저 소중하게 여기며 마치 무슨 의식을 치르듯 경건하게 비닐을 뜯는 친구도 있었다) 새 LP를 턴테이블에 얹고 바늘을 내려서 첫소리를 들으려 할 때, 지지직∼ 하고 잡음이 난다면…. 아, 그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다.

새 LP 알맹이를 빼서 바닥에 던졌다가 다시 주워서 일부러 먼지를 묻히고, 레코드판을 뾰족한 물건으로 긁어보고, 턴테이블의 바늘이 닳거나 부러졌는데 새 바늘로 바꾸지 않고 잡음이 나게 만들어 잡음과 함께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맞아, 이게 아날로그 소리의 참맛이야…’라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면서.

지지직 하는 소리가 좋아서 LP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아니야, 새 레코드판에서는 잡음이 하나도 없어…”라고 말해주면 갑자기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치 내가 틀린 말을 하는 것처럼. 물론 많이 사용해서 낡고 관리가 안 된 LP에서 잡음이 나기 시작하고, 어쩌면 그 소리에 오랫동안 익숙해져서 잡음이 조금 섞여도 음악을 감상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정상적인 소리가 아니다. 누군가는 지지직∼ 하는 소리를 디지털시대에 살면서 아날로그시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향수일 거라고 했지만, 아무리 잘 꾸며도 그 소리는 잡음일 뿐이다.

유명한 기타 회사에서, 새 기타의 도장(塗裝)을 일부러 긁어내고 광택을 죽이고 기름때를 묻히고, 심지어 피우다가 줄감개 옆에 꽂아둔 담배가 나무를 태워 먹은 흔적까지도 똑같이 만들어서, 마치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낡은 기타처럼 만들었다. 그러고는 ‘레릭(Relic) 기타’라고 이름을 붙여 새 기타보다 훨씬 더 비싼 값에 팔고 있는데, 오히려 새것보다 더 귀한 아이템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예스러운(낡은) 느낌을 위해 일부러 잡음을 넣었다면 말이 되지만, 아날로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지지직∼ 소리를 넣었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다시는 듣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오늘도 젊은 친구들의 새 음악이 발표되었다는 기사에서 ‘지지직∼ 하는 아날로그의 정감 어린 소리를 일부러 섞어서…’라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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