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모델인 최흥철, 김현기 선수가 한국 스키점프 대표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경기에 출전했던 지난 19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에 많은 관람객이 들어와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영화 ‘국가대표’의 배경…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평창

영화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
김현기·최서우·최흥철 3人
올림픽에 6회 연속 ‘출사표’

캄캄한 밤하늘 날아오르는
한마리의 인간새 장면 압권
슬로 모션·묵음 처리 환상

수만명 관중과 조명·플래시
밤하늘과 눈밭의 흑백 대조
10년전 스크린속의 이야기
평창 올림픽서 그대로 재연

지난 2011년 여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한국의 평창이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안시를 따돌리고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내던 밤의 열기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평창’을 외치자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 있던 한국 관계자들뿐 아니라 강원도청 앞 광장에 모인 도민들까지도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세 번째 도전 만에 일궈낸 결과였기에 기쁨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오랜 기원의 실현은 본격적인 올림픽 준비의 시작으로 이어졌고, 약 6년 6개월 후 우리는 92개국에서 온 선수단을 맞았다. 동계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다.

각종 포털 사이트와 매체들은 올림픽 개최 한참 전부터 시간을 두고 쇼트트랙이나 빙속, 스켈레톤처럼 메달 획득 가능성이 큰 종목뿐 아니라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참가만으로도 의의가 있는 종목 및 선수들을 조명하며 분위기를 서서히 달궜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인터뷰를 통해 전해지는 한국 대표 선수들의 각오와 사기는 남달랐다. 메달권을 향한 새로운 얼굴들의 투지도 미더웠지만, 개최국 대표선수로서 수년간 갈고닦은 기량을 후회 없이 보여주겠다는 노장들의 다짐이 더 뭉클하게 다가왔다. 6회 연속 올림픽에 참가하는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 김현기와 최서우도 바로 그런 출사표를 던진 이들이다.

스키점프라는 종목이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2009년 여름에 개봉해 약 850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던 영화 ‘국가대표’의 역할이 컸다. ‘신과 함께: 죄와 벌’을 통해 이른바 ‘1000만 감독’에 등극한 김용화 감독이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에 이어 흥행사로서의 장기를 확실히 보여준 작품이다. 관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작품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리겠지만, ‘국가대표’는 총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상업영화로서 그 본분을 다했다. 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제작되는 동계스포츠 소재 영화로서 근 10년 동안 관련 대회가 열릴 때마다 언급돼 온 의미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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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흥철, 김현기, 최서우, 강칠구 등 네 명의 스키점프 선수들은 이 영화의 실제 모델로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중 김현기와 최서우, 최흥철은 이번 올림픽에서 ‘국가대표’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대에 올랐다. 더욱이 개인전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던 최흥철은 뒤늦게 IOC의 허가를 받아 단체전에 출전하는 기회를 얻었으니 꽤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국가대표’에는 저마다 다른 목표를 갖고 스키점프팀에 합류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됐던 ‘차헌태’(하정우)는 가사 도우미를 하며 어렵게 살고 있는 친어머니에게 아파트를 드리기 위해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코치의 딸을 좋아하는 전직 스키선수 ‘흥철’(김동욱)과 곧 태어날 아이가 있는 ‘재복’(최재환), 할머니와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소년 가장 ‘칠구’(김지석)는 군 면제를 받겠다는 목표가 있다.

전(前) 어린이 스키 교실 강사인 ‘방종삼’(성동일)은 스키점프가 뭔지도 잘 몰랐던 이들을 데리고 훈련에 돌입하지만 경험도 전무하고 변변한 장비나 연습장도 없는 이들의 훈련 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그러나 목표가 뚜렷한 네 명의 선수들은 피땀을 흘리며 훈련에 임하고 몇 번의 곡절 끝에 올림픽에 진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이들이 일본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경기를 치르는 부분이다. 스키점프는 야간에만 이루어지는 경기로, 선수들이 스키점프대에서 내려올 때마다 캄캄한 밤하늘에 한 마리의 인간새가 날아가는 듯한 장관이 펼쳐진다. 영화도 이 부분에 집중한 흔적이 역력한데, 경기장의 전경을 빠르게 스케치하는 부분부터 경기 마지막 장면까지 선수들이 스키점프대를 내려올 때, 도약할 때, 착지할 때 등의 모습을 실제 경기중계보다 훨씬 다양한 각도에서 잡아낸다. 선수들의 활강만 해도 클로즈 업, 롱 샷, 익스트림 롱 샷 등 사이즈에 변화를 주고 부감, 평각, 앙각을 섞어서 편집해 속도감과 함께 리듬감까지 느낄 수 있도록 연출됐다.

팀의 리더인 차헌태가 경기하는 장면에서는 그 장점들이 가장 잘 드러난다. 1차 시기, 빠르게 활강하던 그가 점프대에서 날아오를 때부터 관중석 방향으로 비행할 때의 모습은 슬로 모션과 바람 소리 이외에 묵음으로 처리되어 긴장감을 더한다. 2차 시기는 비행 장면이 거의 직부감으로 촬영돼 두 개의 스키가 만드는 V자 모양이 선명하게 눈밭에 새겨진다. 스키점프대의 갈고리 모양으로 휘어진 부분에서 선수들이 내려오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잡아낸 앵글은 여러 번 반복되는데 고글이 얼굴을 거의 다 가리고 있음에도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굳은 결기가 잘 전달된다.

스키점프대에 선 선수들의 시점 샷으로 촬영된 경기장의 전경 또한 환상적이다. 수만 명의 관중이 들어찬 타원형의 스키점프 경기장은 밤하늘과 눈밭이 흑백의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전 세계 국기로 알록달록하게 수 놓인 관중석은 커다란 조명과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로 반짝인다. 이처럼 시각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함성과 열기로 가득한 경기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포착해낸 것이 ‘국가대표’의 성공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처럼 스키점프의 박진감과 규모감을 살리기 위해서 레드 원, 캠캣을 비롯해 무려 열 대의 카메라가 동원되었고, 컴퓨터그래픽으로 만진 부분도 약 600컷이나 된다. 이렇게 공들인 이미지에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흥분된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영화는 실제로 스키점프 경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탁월한 스포츠 중계로 사랑받아온 방송인, 김성주를 아나운서로 캐스팅한 것도 영화에 리얼리티를 더하는 데 좋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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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평창에서 이 장면을 촬영한 것은 약 10년 후 이곳에서 열릴 동계올림픽을 예비한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솔봉로에 있는 알펜시아 스키점프 경기장은 노멀힐, 라지힐, 보조경기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석까지 약 1만35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2008년 개장해 2009년 국제스키연맹(FIS) 스키점프 대륙컵 때 처음으로 손님을 맞았으나 바람이 너무 거센 곳에 위치해 있어 바람막이 공사를 추가로 진행하는 곡절도 겪었다. 경기와 훈련이 없을 때는 유료 전망대를 통해 관광객들도 선수들이 출발하는 지점까지 가볼 수 있다.

5분 정도 모노레일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 밑이 훤히 보이는 철제 다리를 건너면 바로 스키점프대에 도착한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가파른 경사와 긴 거리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지만, 하늘을 가르며 뛰어내릴 때 선수들의 기분만큼은 더욱 궁금해진다. 아마도 정말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는 느낌이 아닐까. 그 짜릿함과 아찔함이 늘 공존하는 곳이 바로 알펜시아 스키점프 센터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이틀 뒤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단언컨대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경기가 없는 낮에는 리조트 근처부터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산속에 우뚝 솟은 125m의 스키점프대를 멀찍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팽팽한 긴장감과 뜨거운 열기 등 큰 경기를 치르고 있는 공간의 비범한 기운만큼은 강하게 느껴졌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당대 최고의 스키점프 선수들이 방문했던 이곳을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계간 ‘쿨투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