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본 사찰 곤고지(金剛寺)의 주지 소임을 맡게 된 법현 스님(오른쪽)이 백제의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진 일본 3대 사찰 중 하나인 젠코지(善光寺)의 후쿠시마 주지 스님(왼쪽)과 환담을 하고 있다. 법현 스님 제공

- 4월8일 나가노현 곤고지 주지스님으로

역촌시장의 ‘저잣거리 스님’
해외서 한국불교 포교 나서

일제 징용 교민들이 세운 절
백제가 심은 적송숲 둘러싸여

“현대적 힐링과 자연환경 결합
위기의 日불교 새바람 될 것”

서울 은평구 갈현동 역촌중앙시장의 ‘저잣거리 스님’으로 유명한 태고종 열린선원 선원장 법현 스님이 일본 나가노(長野)현 소재 사찰 곤고지(金剛寺)의 주지 소임을 맡는다. 법현 스님은 일본의 부처님오신날인 4월 8일 전통을 갖춘 진산식(晉山式·사찰 주지의 취임식)을 열고 한국 불교 포교에 나선다.

199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익숙한 나가노는 한국 불교와 인연이 깊다. 법현 스님은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나가노시에 있는 일본 3대 사찰 중 하나인 젠코지(善光寺)는 538년 백제 성왕이 전한 일본 최초의 불상 ‘아미타삼존불’(1953년 일본 국보 지정)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사찰”이라며 “나가노동계올림픽 당시 이 사찰의 범종이 세계평화의 기원을 담아 울려 퍼지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고 전했다. 마치 이번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상원사 범종이 울리며 막을 연 것과 비슷하다. 법현 스님의 진산식에는 젠코지 주지인 후쿠시마 스님이 참석해 축사하기로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일본 나가노현 소재 사찰 곤고지의 전경.

나가노는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왔다 정착한 교민들이 적지 않게 살고 있다. 곤고지는 40년 전 우리 교민들이 세운 절이다. 일본의 대개 사찰이 고령화와 단가제도(檀家制度)라는 사찰 장례문화가 사라져 운영이 어려운 현실에서, 곤고지도 여러 차례 경매에 넘어갈 위기를 겪었다. 법현 스님은 “20년 전부터 곤고지와 인연이 있었는데, 사재를 털어 사찰을 구한 세 명의 교민 중 신도회장 정정순(91) 씨가 주지를 맡아 달라고 지극하게 요청해 소임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도심의 시장에서 선원을 세워 포교해온 법현 스님이 위기의 일본 불교 속에서 곤고지의 주지로 적임자일 수 있다.

법현 스님은 “열린선원에서 해왔듯이 신자들과 손을 맞잡고 만나고, 한국 불교의 템플스테이의 경험과 곤고지의 자연환경을 살린 현대적 힐링을 결합하는 포교·운영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젠코지의 아미타삼존불이 14년 만에 한 번씩 대중에게 공개되고, 스님들의 예불에 신자들이 참석을 하지 못하는 등 일본 불교는 우리보다 더 닫혀 있는 것 같다”며 “대웅전의 문을 활짝 열고 설법과 수행지도, 신행 상담을 통해 신자들을 만나겠다”고 말했다.

곤고지 주변은 백제 유민들이 씨를 가져다 심었다는 한국산 적송(赤松)숲이 감싸고 있고, 사찰 부지에 85도의 유황온천수가 나온다고 한다. 스님은 “요사채(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를 리모델링해 게스트하우스로 등록해 참선 수행과 경행(經行·가볍게 걸으면서 하는 수행), 예불 참석, 힐링을 할 수 있는 ‘힐링스테이 사찰’로 가꿔 일본 포교에 새 바람을 불어넣겠다”고 밝혔다. 스님은 서울의 열린선원도 돌봐야 하므로 곤고지에 상주하지는 못하고, 왕래하며 법회를 봉행할 예정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징병·징용의 쓰라린 흔적이 남은 이곳에서 민족혼을 위로하고, 교민들의 마음을 보듬을 것”이라며 “불교를 통해 갈등을 빚는 한·일 간에 소통과 상생의 문호를 여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