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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문화재청장

조선왕조실록 세종 8년(1426년) 2월 26일 기록에는 ‘화재로 가옥이 연소돼 재산을 탕진하게 되니, 애석합니다. 따로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하여…’라는 내용이 나온다. 금화도감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소방관청이다. 그 며칠 전인 2월 15일 한양의 한 가정에서 시작된 화재가 대형으로 번지자 왕실 차원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다스리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또, 태종실록에는 돈과 곡식이 있는 시설에서는 불을 삼가라는 명령과 함께 담을 높이 쌓아 불이 번지지 않도록 방비하라는 방재(防災)대책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정조 8년(1784년)에는 행각에 화재가 발생해 전각으로 불이 옮겨붙을지 모를 상황에서 남보다 먼저 지붕에 올라 불을 끈 사람들에게 상을 주라고 하명한 기록도 있다.

조상들의 꼼꼼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은 자주 나타났다. 해방 이후에는 천년고찰 낙산사 화재를 비롯해 여수 향일암 화재, 김제 금산사 방화 등 안타까운 사고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중에서도 국보 제1호 숭례문의 2008년 2월 10일 방화 사건은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아 있다. 예를 숭상한다는 뜻을 담은 숭례문의 훼손된 현판을 보면서 문화재 관계자들은 심한 자책을 했다. 어느새 10년 세월이 지났다.

숭례문 화재 사건은 우리의 문화재 방재를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더는 이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방재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특히, 국내 건축 문화재의 상당수가 목조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화재 발생 시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치밀한 방재대책이 필요했다. 또한, 숭례문 화재는 문화재 보존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문화재는 언제나 위기에 처해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 것이다. 따라서 문화재 안전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사후 복구’에서 ‘사전 방지’로 정책 기조를 전환했다. 전통적인 안전관리 방식인 사람에서부터 첨단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책을 마련, 추진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해 유사시 소방관서 등 관계 기관에 필요한 장비 및 인력을 협조 요청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고, 문화재를 갖고 있거나 관리하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안전 교육과 훈련을 받도록 했다. 또한, 소방설비 설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문화재 특성에 맞는 맞춤형 방재설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방재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국립문화재연구소에도 안전방재연구실을 신설했다. 물적·인적 방재 인프라도 구축했다. 국보·보물로 지정된 목조문화재에는 100% 방재시설을 설치했으며, 등록 목조문화재에도 방재시설을 갖추는 중이다. 현장에 안전경비원을 24시간 배치했고, 재난대응 협력체계도 구축했다.

재난 상황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근래의 경주와 포항의 지진은 문화재 방재의 영역이 더 넓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지진 대응 매뉴얼을 개선하고 문화재 현장별 소유자와 관리자가 활용할 수 있는 지침서 작성 근거를 마련했다. 올해부터는 문화재 방재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예방·대응·복구 단계별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 등의 첨단 방재기술을 적용해 나갈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10년 전 숭례문 화재사건을 계기로 매년 2월 10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제정해 각종 홍보와 훈련을 병행하면서 방재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문화재는 후대에 물려줘야 할 우리의 소중한 미래다. 문화재를 보호하는 시민의식이 뒷받침된다면 우리의 찬란한 전통과 우수한 문화재의 가치는 대대손손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