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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일 소설가, 동서문화 발행인

한국 서양화단의 거장 오지호(吳之湖·1905∼1982). 우리는 그를 한자교육의 체계적인 이론가로 더 잘 기억하고 있다. 1968년에 나온 그의 저서 ‘현대 회화의 근본 문제’는 국한문혼용 문제를 다룬 책의 효시로 꼽을 만하다. 그의 사색 진폭은 이희승·이숭녕·남광우 등과 민족 교육을 위한 교유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부터 더욱 넓어졌으며, “한자교육은 나라 살리는 운동이다. 한자교육은 반드시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신념을 굳히게 된다. 1971년 8월에 발행된 ‘국어에 대한 중대한 오해’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그 뒤로 한자교육만이 우리 어문교육을 바로잡는 진리라고 믿었던 그의 노력은 이어졌고, 1979년 ‘알파베트 문명의 종언(終焉)’을 펴냈다. 이 책은 한자교육에 체계적 이론과 초등학교 한자교육 실제에 바탕을 두고 엮어낸 또 하나의 역작이다. ‘국어에 대한 중대한 오해’에서 오지호는 그 시절의 아동이 해방 전 아동에 비해, 또 외국 아동에 비해 추리력과 창의력, 곧 사고 능력이 결여된 원인을 명료하게 밝혔다. 그는 아동의 학력 저하 원인은 명확지 않은 초보적 지식 단편만을 암기하는 데 있다고 지적하고, 이로 말미암아 어린 학생들은 정신적인 불구자가 됐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1945년 광복 이후부터 당시까지 ‘국민보통교육’은 인간의 문화 능력을 퇴화시키고, 반복에 따른 동물적 훈련 결과밖에 가져오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적·국민적 흥망에 관한 중대하고도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이는 오늘날 초등학생의 학력 저하 현상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어 오지호의 지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아동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도 학력이 수준 이하인 원인을 오지호는 이 책 ‘교문 당국의 오해’에서 더욱 분명하게 제시한다. 아울러 1971년 4월호 ‘교육평론’에 그는 ‘초등생 학력 저하의 요인 진단’이란 머리글을 소개하면서, ‘초등생의 학력 저하 현상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망국 교육의 결과를 벗기 힘들 것 같다. 우리 교육은 이런 병폐를 깨우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인용, 강조한다. 47년 전 글이지만 지금 읽어도 어느 하나 정곡을 찌르지 않는 것이 없다. ‘국어에 대한 중대한 오해’에 나타난 오지호의 예견은 대학 졸업생이 부모 이름, 졸업한 학교 이름조차 한자로 제대로 쓰지 못해 그 뜻을 모르는 오늘날 현실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오지호는, 교사는 더할 나위 없이 잘 가르치고 있고 아동은 인간의 체력으로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죽도록 공부하고 있는데도 저능화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국어교육에서 한자를 모조리 없앴기 때문이라고 탄식했다. 한자를 제거함으로써 무한한 언어능력을 빼앗은 것이 아동의 사고 능력을 떨어뜨리는 중요하고도 절대적인 원인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언어만큼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미 습득한 언어를 통해서만 사고력을 갖출 수 있다. 즉, 깊은 사고력은 높은 언어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초등학교 시절은 두뇌 계발과 인격 형성의 황금기이다. 무엇보다도 한자교육으로 어휘력이 충분히 발달해야 사고력·이해력·표현력·감수성이 풍요로워질 수 있으며, 이는 창의력으로 발전해 다재다능한 능력으로 이어진다.

창의력이 절대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아동들에게 한자를 통한 의미 이해 교육을 받게 할 것인가, 암기식 주입교육을 받게 할 것인가? 오랜 논란 끝에 겨우 이뤄진 ‘초등 한자 300’ 국어교육을 정부가 슬그머니 또 포기했다고 한다. 선각자 오지호 선생의 탄식이 더욱 귓전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