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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고 위험한 ‘북핵 평화론’

기사입력 | 2018-01-24 14:02


황성준 논설위원

공포 균형 뺀 ‘핵 평화’는 허구
北 국지 도발에 무기력하게 돼
美, 저강도 핵전략으로 전환 중


북한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과정을 통해 북핵(北核)은 자위용이며,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한반도 안정과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북핵 평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김정은의 이런 궤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평창올림픽 이후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북핵 폐기가 전제되지 않는 남북대화 및 교류가 진행될 경우, 북핵이 사실상 용인되는 상황도 가능하다. 이와 관련, ‘핵 있는 평화(nuclear peace)’ 주장이 왜곡된 형태로 한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핵 있는 평화’는 핵무기의 ‘상호확증파괴(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덕분에 전쟁 없는 상태란 의미의 평화가 보장된다는 국제관계 이론가 케네스 왈츠의 핵전략 이론이다. 그리고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은 원인을 설명하는 주요 논리다. 이 이론의 핵심은 선제 핵공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제2차 보복 타격 능력’을 포함한 ‘공포의 핵 균형’이다. 따라서 이 이론을 한반도에 적용하면, 한국도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독자적 핵 개발은커녕 미 전술핵 도입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핵 있는 평화를 거론하고 있으니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는 ‘변형된 핵 있는 평화’는 미국과 북한 간의 핵 균형을 말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대등한 균형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배치한다면, 북한이 미국에 대한 ‘최소 억지(minimal deterrence)’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마저 완성된다면, 북한은 제2차 보복 능력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대(對)한반도 개입은 제약될 수밖에 없고, 한국은 김정은의 갑(甲)질 속에서 눈치 보며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또, 핵 있는 평화가 미·소 전면전은 막았는지 모르나, 제한전(limited war)까지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냉전 시기의 여러 국지전, 핵무장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계속되는 무력 충돌, 그리고 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 하이브리드 전쟁 형태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핵 있는 북한’이 백령도 점령과 같은 도발을 해도, 한국은 반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즉, 북핵 평화는 미·북 간의 전쟁 없는 상태이자, 북한의 대남 국지전 자유를 의미하게 된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핵전략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핵무기 없는 세상’에서 ‘핵무기 확대 및 저강도 핵무기 확보’로 바뀌고 있다. 이는 최근 공개된 2018년 ‘핵 태세 검토보고서(NPR·Nuclear Posture Review) 초안에 잘 나타나 있다. 미국은 1994년부터 8년 단위로 NPR를 작성해 왔는데, 지난 2010년 NPR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을 적용하는 ‘소극적 안전보장’을 약속하는 등 비핵화가 주된 목표였다. 그러나 이번 NPR는 너무 크고 치명적인 핵무기만 보유하는 것은 ‘자기 억제’의 형태이기에 실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0.1∼수kt의 위력을 갖는 저강도 핵무기를 갖추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케어 리버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 핵시설 5곳을 0.3kt 저강도 핵무기 B61로 정밀타격하면 인명 피해를 100명 미만으로 최소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455kt 규모의 W88 핵탄두를 사용했을 때 200만∼300만 인명 피해가 예상되는 것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무기 실제 사용 가능 노선은 미국 재정 문제가 맞물려 더욱 강화되고 있다. 재래전 전력으로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보다 이에 상응하는 핵전력을 갖추는 예산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다. 지난 19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발표한 ‘2018 국가방위전략’에 따르면 미국의 최우선 안보과제는 더 이상 대(對)테러전쟁이 아닌 중국·러시아와의 경쟁이다. 따라서 미국의 핵전략도 테러집단으로의 핵확산 방지에서 대중·대러 핵전력 확보로 바뀌게 된 것이다. 특히, 중국은 이제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됐다. 이에 미국의 주(主) 전선은 중동에서 한반도와 남중국해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가 21세기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음에도 남북대화 및 교류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청와대와 여권 내부에 여전하다. 북한 핵무기는 미국과 북한 간의 문제이거나, 미국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는 식이다. 한·미 동맹이 굳건하지만, 더 굳건한 안보 의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안보를 남에게 위탁하고도 존립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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