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을 23일 앞두고 남북이 17일 합의한 내용 중에는 올림픽 차원에서 직접 필요한 조치들을 뛰어넘는 것이 많다. 자칫 잘못하면 평창올림픽이 대북(對北) 제재 완화와 교류·지원 확대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북핵 문제의 엄중함을 고려할 때, 어떤 경우에도 평창이 김정은의 위장평화 공세나 북한 체제 선전장으로 활용되게 해선 안 된다. 과거 북한 도발에 대한 면죄부가 돼서도 안 된다. 그런데 11개 항의 공동보도문을 보면 이런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수단 공동입장에서 태극기를 포기하고 한반도기를 들기로 한 것이나, 여자 아이스하키팀 단일팀 구성은 올림픽 정신에도, 문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과 정의에도 어긋난다. 17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공동입장을 하더라도 태극기와 인공기를 각자 들자는 의견이 많았다.

더 심각한 합의는 문화행사를 금강산 지역에서 개최하고, 마식령스키장에서 공동훈련을 하기로 한 것이다. 두 행사 모두 평창올림픽과 상관없는 ‘쇼’다. 더욱이 2008년 박왕자 씨 피살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고,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5·24 대북 제재 조치로 국민의 방북도 불허된 상태다. 북한 정권은 어떤 변화도 없는데, 이런 제재에 스스로 구멍을 뚫는 셈이다. 마식령스키장은 김정은의 대표적 치적으로 선전되는 시설로, 2013년 말 개장 때부터 유엔 제재를 위반하며 건설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도 먼저 마식령스키장 이용을 제시했다니, 김정은 치적 선전에 앞장서는 결과를 자초한다. 거기서 훈련할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 선수도 아니라고 하니 더욱 의도가 의아하다.

그러지 않아도 김정은 신년사로 촉발된 대화 국면으로 북한 핵무기 위협과 심각한 인권유린 등의 문제가 묻히는 데 대한 국내외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남북대화가 북핵 폐기를 위한 북·미 대화 등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북한에 따질 건 따지고, 할 말은 해야 한다. 문 정부 움직임을 보면, 그런 최소한의 균형 감각은 고사하고 되레 과도한 저자세를 보이며 북한이 원하는 것을 먼저 제시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북측 대표는 “마치 6·15 시대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라며 흡족해 했다. 2000년 정상회담 대가로 건네진 돈과 시간이 6차례의 핵실험과 대한민국 국민과 장병을 죽인 도발로 돌아왔음을 잊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