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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2011년 9·15 대정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신호등 고장으로 도로는 아수라장이 됐고, 금융거래가 끊겼으며, 병원에선 치료를 못 해 발을 동동 굴렀다. 5시간이 채 못된 시간이었지만, 블랙아웃의 공포를 실감하기엔 충분했다. 그날 이상 고온으로 전기 사용이 급증하면서 예비전력 안정 기준인 400만㎾ 아래로 떨어졌다. 다급해진 전력 당국은 지역별로 돌아가며 예고 없이 전기를 끊었다. 근본 원인은 발전설비 부족이었다. 이전 정부가 전력 수요를 지나치게 낮게 잡은 탓이다. 큰 교훈을 얻고 발전소 건설에 박차를 가하면서 7881만㎾였던 발전설비는 이제 1억1400만㎾를 넘었고, 공급예비율은 10% 중반대로 여유가 있다.

전력이 빠듯한 시절은 지났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비상신호가 속출한다. 지난해 7월 2차례 연거푸 급전 명령이 발동됐다. ‘급전’이 떨어지면 기업은 공장 가동을 일부 멈추고, 그만큼 금전으로 보상받는다. 생산 차질은 불가피하고, 정산금 역시 국민 세금이라 급전은 없는 게 최선이다. 그 전 발동 사례도 총 3차례뿐이다. 모두 고개를 갸웃거리던 터에 난데없는 한자 논쟁이 붙었다. 정부·여당은 언론에서 쓰는 급전(急電)이 아닌 급전(給電)임을 극구 강조했다. 요컨대 비상한 조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일본식 용어인 급전(給電)으로 확인됐지만, 기업으로선 전기를 끊고는 거꾸로 준다고 하니 더 아리송할 뿐이다.

잠잠했던 급전 논란이 겨울 들어 되살아났다. 지난 12월엔 13·14·20일, 1월 들어선 11·12일 급전 지시가 내려왔다. 두 달 새 5번이나 공장 전기를 끄라고 비상벨을 울렸다면 정상적인 나라로 보기 어렵다. 특히 12일 3615개 기업으로 전달한 감축 지시량 3300㎿는 역대 최대다. 원전 3기 발전량과 맞먹는다. 이날 급전 지시가 없었어도 공급 예비율은 11.4%로 두 자릿수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굳이 호들갑을 떨 상황이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지난달 확정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이번 겨울(2017.12∼2018.2) 최대 전력수요를 8만5200㎿로 2년 전 예측보다 3000㎿ 낮춰 잡았다. 12일 최대 전력수요는 8만5500㎿로 예측치를 넘겼고, 급전이 없었다면 8만8800㎿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수시 급전을 통해 전력수요 예측의 오류와 그 뒤에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를 가리려 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