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은 세계 속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더 높이고, 국민 에너지를 재결집해 경제·안보 위기를 딛고 재도약하는 획기적 계기가 돼야 한다. 이런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에 국민은 빠듯한 국가 재정에도 엄청난 혈세 투입을 용인했고, 대표 기업들은 피말리는 글로벌 경쟁에 내몰리면서도 직·간접적 기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일각에서 이런 여망에 배치되는 행태에 앞장서듯 하고 있어 실망스럽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으로서, 목숨을 건 국군의 전투 현장에서, 국가 대표선수들의 피땀이 응축된 국제대회 시상식에서, 그리고 모든 국민적 환호와 고난의 현장에서 국민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런데 주무 장관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5일 국회에서 “남북 공동입장이 합의되면 한반도기를 들게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부산 아시안게임, 대구 유니버시아드 주최 때의 전례와 선수단 입장 선두에 대형 태극기가 있을 것이란 점을 자기 합리화 근거로 제시했다.

다음의 세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다. 첫째, 안보 정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지, 알고도 무시하는지 의아하다. 부산 아시안게임과 대구 유니버시아드는 각각 2002년과 2003년에 열렸다. 당시엔 남북 화해의 여지가 일부나마 있었다. 그러나 2006년 1차 핵실험과 그 이후 북핵·미사일 도발,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그런 환상은 깨졌다. 중국은 물론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북한에 대한 전방위 봉쇄에 동참하고 있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측이 나쁘지만, 두 번 속으면 속는 사람이 바보다. 한반도기와 미녀응원단을 앞세운 현란한 쇼를 이용해 북한은 핵무기에 필요한 돈과 시간을 조달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다음으로, 올림픽은 아시안게임이나 유니버시아드와 그 위상이 다르다. 도 장관은 선수단 맨 앞에 태극기가 있기 때문에 ‘태극기 실종’은 아니라고 하지만, 선두의 국기는 개최국 상징이므로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올림픽은 철저히 국내외 정치와 단절돼야 하며, 그런 점에서 한반도기 입장으로 잘못된 선례를 남겨서도 안 된다. 마지막으로, 협상도 하기 전에, 북한의 공식 요구도 없었는데 태극기를 자진해서 포기했다. 어느 나라 장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굳이 공동입장을 해야 한다면, 태극기와 인공기를 각자 드는 게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