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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외국인 여성이 사우디를 혼자 여행하려면 25세가 넘어야 한다고 11일 밝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른 나라에서 보기엔 어이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우디 입장에선 ‘혁명적’이라 할 정도로 파격적인 것이다. 우선, 사우디엔 관광비자 자체가 없다. 올 1분기에 첫 관광비자가 발급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관용·성지순례·상용 비자뿐이었다. 성지순례 비자는 무슬림에게만 발급되며, 상용 비자도 사우디 초청자가 있어야 하는 등 발급이 까다롭다. 이 때문에 순수하게 관광 목적으로 방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건설공사를 많이 수주한 덕분에 다녀온 사람이 많은 한국에선 사우디 방문을 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으나, 서구에선 사우디를 북한 다음으로 방문하기 어려운 곳으로 여긴다.

또, 사우디에선 아버지·형제·남편과 같은 남성 친척이 동반해야 외출이 가능한 ‘남성 보호자(마흐람) 제도’가 유지돼 왔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외국 여성은 25세 이상이면 혼자 다닐 수 있다고 하니,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번 개혁 바람은 지난해 6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체제가 들어서면서 불기 시작했다. 12일 가족석에 한정되긴 했지만 여성이 처음으로 경기장에서 직접 축구를 관람했으며, 올 6월부턴 여성 운전도 허용할 방침이다. 사실상의 쿠데타로 집권한 빈살만 왕세자의 행보는 거침없다. 심지어 지난해 9월엔 이스라엘을 비밀리에 방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우디는 탈석유 경제 계획 ‘비전 2030’에 따라 관광 산업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음주를 허용하는 특별 관광지도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 관광객을 대거 유치하는 것은 힘들 것이란 견해도 적지 않다. 현재도 이슬람주의 테러가 빈발하고 있는데 ‘반(反)샤리아(이슬람 율법) 관광’을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이 그냥 내버려두겠냐는 분석이다. 또 아무리 풀어준다 하더라도 이슬람 율법에 따른 복장 규정과 성별 분리 등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에, 서구 관광객 유치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어쨌든 사우디도 개혁·개방을 시작했다. 첫술에 배부르진 않을 것이다. 이슬람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빈살만 왕세자가 사우디판 고르바초프가 될지, 아니면 덩샤오핑(鄧小平)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 개혁·개방은 언제 시작될지,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