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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코믹 연기로 돌아온 이병헌

“웃음·슬픔 버무린 영화 공식에
차이 만들어 내는게 배우 역할

선배 윤여정·후배 박정민과 호흡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생각
브레이크댄스 연습없이 찍어”

“전략이나 작전은 없어요. 그저 제 감성을 건드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따라가죠.”

배우 이병헌에게 “어떤 기준으로 작품 선택을 하냐”고 묻자 이 같은 답을 내놨다. 톱클래스 배우들은 대개 자신의 이미지 흐름을 고려해 전작과 장르나 캐릭터가 겹치지 않게 출연작을 선택한다. 이에 대해 이병헌은 “앞뒤 작품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내 앞에 새롭게 오는 시나리오를 마음을 비워둔 채 읽으려 한다”며 “주변에서 내 필모그래피를 보고 의아해한다. 만약 전략이나 작전이 있다면 좀 다르게 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략이 없다고 했지만 그의 행보를 보면 장르 쏠림 없이 촘촘하게 채워가는 전략을 구사하는 듯하다. ‘내부자들’(2015년), ‘매그니피센트 7’ ‘마스터’(이상 2016년) 등 범죄·액션 대작으로 흥행을 이끌다가 불쑥 ‘싱글 라이더’(2017년)를 선택하며 ‘번지점프를 하다’(2001년) 이후 오랜만에 감성 연기를 펼쳤다.

소설가 김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대작 사극 ‘남한산성’으로 지난해 추석 연휴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후 새해 벽두에는 코믹 드라마로 찾아온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은 한때 동양챔피언에 올랐지만 지금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전직 복서 조하(이병헌)가 중학교 때 집을 나간 엄마(윤여정)와 우연히 만나 처음 보는 자폐아 동생 진태(박정민)와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윤제균 감독이 이끄는 JK필름이 제작한 이 작품은 ‘배우의 영화’라 할 수 있다. ‘레인맨’ ‘파파로티’ ‘형’ 등 국내외 여러 영화가 겹쳐지는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가 예측 가능한 흐름으로 전개되지만 이병헌을 비롯해 윤여정, 박정민 등 주연 배우들과 조연들까지 찰떡 호흡으로 맛깔나는 연기를 빚어내며 재미있는 영화로 완성했다.

이병헌은 “이야기에 스며들고 캐릭터에 젖어들며 연기했다”고 소개했다.

“매번 ‘뻔한 이야기’라고들 하는데 당연한 얘기예요. 영화가 생긴 이래 100여 년 동안 비슷한 공식으로 만들어졌죠. 물론 공식에서 벗어난 실험영화도 있지만 대부분의 상업영화가 좋은 놈이 정의의 힘으로 나쁜 놈을 이기고, 웃음과 슬픔이 어우러지고, 불행하다가 반전으로 희망을 전하잖아요. 다만 어떤 배우가 어떤 디테일로 어떻게 보여주냐가 다를 뿐이죠. 미묘한 차이로 다르게 보이고, 다른 감동을 선사하는 게 영화라고 생각해요. 배우가 이야기에 스며들고 캐릭터에 젖어들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어요. 그 안에서 뭔가 변화를 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려 해요.”

그는 이번 영화에서 작은 동작으로 캐릭터의 맛을 살리고, 스치듯 지나가는 표정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조하가 오랜만에 엄마 앞에서 브레이크댄스를 추며 마음을 여는 장면은 웃음과 슬픔이 어우러진 명장면이다. 그에게 “얼마나 연습을 했냐”고 물었다.

“피나는 노력을 한 것처럼 보이죠(웃음). 전혀 연습 안 하고, 리허설도 없이 바로 춘 거예요. 시나리오에는 ‘갑자기 일어나 브레이크 댄스를 춘다’라고만 쓰여 있었어요. 그냥 고등학교 다닐 때 췄던 기억을 살려 팔을 꺾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어요. 근데 감독님이 컷을 안 하고 계속 찍더라고요. 윤여정 선생님은 깔깔 웃으며 다시 해보라고 했고요. 그래서 또 췄죠. 편집할 줄 알았는데 그대로 들어갔네요. 몇몇 스태프는 그 장면을 보며 울었다고 하네요.”

이병헌의 이름 앞에는 ‘연기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풍성하게 다가온다. 그에게 “지금 현재 자신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질문을 던지자 강의하듯 술술 말을 풀어내던 그가 갑자기 입을 닫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어려운 질문이네요. 대선배인 윤 선생님, 후배인 정민 씨와 이번 영화를 촬영하며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하시며 여전히 관객이 찾는 이유와 신인상을 휩쓸며 순식간에 인정받은 이유가 뭔지 느꼈어요. ‘연기신’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많이 놀랐어요. 그러다가 잘한다는 얘길 저렇게 과격하게 하는구나 생각했죠(웃음). 근데 우리나라엔 연기신이 너무 많아요. 연기신 100명에 아닌 사람 3명 정도라서 아니라고 하면 충격받을 것 같아요(웃음).”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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