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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美 안보·경제 분리 접근 위험하다

기사입력 | 2017-10-17 11:45

정진영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위한 절차가 개시됐다. 우리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미국의 통상 압박도 강해지고 있다.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도 시끄럽다. 야당들은 미국과 당당히 협상하겠다던 정부가 백기 투항을 했다고 비난한다. 북한에 800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정부의 대북 정책이 미국을 자극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미국에 백기를 든 게 결코 아니라고 항변한다. 심지어 주무 부서의 장들은 한·미 FTA 폐기가 우리 쪽의 카드이기도 하다고 얘기한다.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전시 작전통제권의 조기 환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보수 야당들은 엄중한 안보 위기 상황에서 전작권 전환 얘기를 꺼내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광복절 경축사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전쟁 불가론을 강력히 폈다.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 당연히 미국에 대해 한 말로 받아들여졌다.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강조했다. 대통령의 ‘지당한 말씀’에 보수 야당들은 속으로는 ‘평화 타령’이라고 부글거렸겠지만 겉으로는 침묵했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엄중한 안보 위기 상황에서 우리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몇 가지 어설픈 장면들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명분에 집착하고 야당들은 정쟁에 몰두해 있다. ‘당당한 협상’과 ‘한반도 평화’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명분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대놓고 아무 때나 이야기하는 것과 이런 목표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신중히 취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청와대와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해 어설프고 아마추어 같다는 평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안보를 중시한다는 보수 야당들도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서는 미국이 아쉬워하는 한·미 FTA 개정 협상에 적극 임하라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부의 협상 태도가 안이하다고 비난한다. 북핵 위기 앞에 ‘평화 타령’이 마음에 안 들면 대안을 내놔야 하는데, ‘전술핵 재배치’ 타령이나 반복하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집착하는 무능한 야당이다.

북핵 위기는 1, 2년 사이에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착해 온 것은, 소극적으로는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었지만, 적극적으로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북한의 핵 위협은 이제 대한민국 안보에 있어서 상수(常數)다.

이런 북한의 핵 문제를 전쟁이 아니라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명분상 타당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큰 위험이 숨어 있다. 우선, 북핵 위기 해결이라는 것이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화와 협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대화를 하고 싶으면 전쟁할 각오도 해야 한다. 제재와 압박이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버리면 북한이 대화에 나올 가능성은 더욱 줄어든다. 핵 폐기를 위한 협상에는 더더욱 응할 리가 없다. 자신들의 계획대로 핵무장을 완성한 다음에나 국면 전환용 협상에 나올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핵무장을 한 북한의 위협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가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는 활력을 잃을 것이고, 분배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심해질 것이다. 미래가 암울하다.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의 안보에 도움을 주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용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그래도 굳건한 한·미 동맹과 역동적인 한·미 FTA이다.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든지 우리의 안보는 우리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든지 하는 그럴듯한 명분에 집착해 한·미 동맹과 한·미 FTA에 금이 가게 하면 머잖아 큰 낭패를 당하게 될 것이다. 능력이 없으면서 말을 앞세우면 반드시 낭패를 보는 것이 국제관계의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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