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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의 최측근… 잊어진 폐인… 조선의 駙馬 ‘영욕의 삶’

엄주엽 기자 | 2017-10-12 11:02

역사학자 신채용 ‘왕실의 백년손님’서 집중 조명

왕의 사위를 가리키는 부마(駙馬)라는 용어는 중국 한나라 때 황제가 타는 말의 관리를 황제의 사위가 맡으면서 그 관직명이 굳어진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정식명칭이 의빈(儀賓)이었다. 국왕이나 왕세자의 사위이니 권력의 최측근이어서 조선 초기 성리학에 기반을 둔 정치·사회제도가 정비되기 전에는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권력쟁탈에서 승리해 재상이 되기도 하고 실패하면 역적으로 몰려 처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성리학적 사회질서가 정착되고 성종 대에 ‘경국대전’이 반포되면서 부마는 신분과 학식이 높아도 과거에 응시할 수 없고 벼슬길에도 나아갈 수 없어 점차 잊힌 존재가 됐다. 이로 인해 조선왕조에는 92명의 부마가 있었지만 그들에 대한 자료는 극히 적다. 역사학자 신채용 씨가 그중 정치·문화 부분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12명의 부마를 가려 뽑아 개인별 열전의 형식으로 정리한 ‘조선왕실의 백년손님’(역사비평사)을 펴냈다. 조선왕조 부마와 그 가문의 실체를 다룬 최초의 저서로 볼 수 있다. 저자 신 씨는 “일제가 조장한 조선왕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데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고 자평한다.

조선 초기 부마의 삶을 바로 보여주는 인물이 태조 이성계의 부마 흥안군 이제(李濟)다. 고려말의 권신 이인임의 조카인 이제는 이성계의 둘째 부인 강 씨가 낳은 경순공주와 결혼했다. 첫째 부인 한 씨에게 두 명의 공주가 있었지만 경순공주보다 어렸기 때문에 이성계의 맏사위가 이제였다는 사실을 책은 처음 밝혔다. 이제는 이성계를 도와 정몽주를 격살하는 데 공을 세워 개국 1등공신이 됐지만, 자신의 친처남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정도전 세력과 연합하면서 결국 이방원(태종)에게 피살되고, 경순공주는 비구니가 되고 만다.

조선 제5대 문종의 딸 경혜공주와 혼인해 부마가 된 정종(鄭悰)은 자신의 처남인 단종의 유일한 보호자였다.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난 뒤, 정종은 단종의 복위를 도모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경국대전에는 공주든 옹주든 왕의 여식과 혼인한 자는 위(尉)라는 동일한 명칭의 작위를 주었으며, 정종은 300년이 훨씬 지난 뒤에야 충신으로 인정돼 영양위(寧陽尉)에 봉해졌다.

그런가 하면 조선 10대 연산군을 더욱 난폭한 폭군으로 만든 이는 성종의 부마로서 연산군의 매부인 풍원위(豊原尉) 임숭재(任崇載)다. 조선 시대 대표적 간신으로 거론돼온 임사홍의 아들인 그는 채홍사가 돼 왕과 함께 음행을 일삼고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 역시 연산군처럼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는다. 연산군의 부마 능양위(綾陽尉) 구문경(具文璟) 역시 연산군 폐위의 여파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휘순공주와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하는 기구한 운명을 살게 된다.

선조의 부마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은 병자호란 당시 김상헌을 추종하는 명분론자로, 인조 앞에서 최명길 등 주화파의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일갈하는 강력한 척화론자였다. 인조의 고모부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삼전도비문을 쓰라는 명을 거부해 결국 청나라로 압송되는 굴욕을 당했지만, 김상헌은 그를 역사에 남을 영웅이라 극찬했다.

‘학문이 뛰어나도 쓸 곳이 없고, 재능이 있어도 펼칠 곳이 없는(學無所用 才無所展)’ 부마의 지위는 사대부 자제들로부터 ‘폐인(廢人)’이라 불릴 만큼 기피됐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정치와 담을 쌓고 학자나 명필로 이름을 날린 부마들도 여럿 된다. 중종의 부마 송인과 현종의 부마 오태주가 꼽힌다. 특히 조선 후기 문예부흥을 이끈 정조의 치세에 정조는 고모부, 곧 영조의 부마를 청나라 사신으로 임명하면서 북학의 진흥에 기여하게 했다. 특히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사도세자와 친해 정조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조의 부마 박명원이 청나라행 사신으로 임명돼 박지원을 데려가면서 탄생할 수 있었다.

저자는 “부마와 그 가문을 살펴보면 조선 시대 정치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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