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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 59장 기업가 - 8

기사입력 | 2017-09-22 11:55

“저 새끼, 끈 떨어진 연이야.”

김광도의 뒷모습에 대고 박찬수가 말했다. 한시티의 수원호텔 로비에 앉아 있던 박찬수와 오대영의 앞으로 방금 김광도가 지나간 것이다. 김광도는 일행들에게 둘러싸여 둘을 보지 못했다. 박찬수가 말을 이었다.

“곧 중국에 투자한 사업장이 줄줄이 부도가 날 거야. 벌써 은행들이 돈줄을 죄고 있다는군.”

“도대체 사업장이 몇 개인데 그래?”

오대영이 물었다. 둘은 각각 철근 도매상과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유라시아그룹에 오퍼를 내었다가 번번이 헛물을 켠 경험이 있다.

“그래도 망하기야 하겠어?”

오대영이 커피잔을 들고 말했다.

“한랜드의 유라시아그룹이 뒤를 받쳐 주겠지.”

“모르는 소리, 서동수 배경이 있을 때 유라시아그룹이야. 이젠 이곳 한랜드의 유라시아도 흔들릴 거다. 벌써 완다그룹이 신도시의 절반을 유흥구 용도로 낙찰받은 것을 봐.”

박찬수가 열변을 뿜었다. 과연 그렇다. 중국의 재벌인 완다그룹은 한시티 북방 100㎞ 지점에서 개발되는 신도시의 절반을 한랜드 정부로부터 낙찰받은 것이다. 유라시아그룹도 응찰했지만 완다그룹에 밀린 셈이다. 이것은 서동수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나서 열흘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깨를 부풀린 박찬수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김광도가 며칠 전에는 서울로 날아가 서동수를 만나고 왔더구먼. 뒤를 밀어달라고 부탁했겠지.”

“그나저나 자네, 철근 안 팔려서 어떻게 하나? 1, 2억도 아니고 15억 원이나 밀려 있다면서?”

오대영이 화제를 돌렸다. 오후 3시 반, 호텔 로비는 한산해지고 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모두 일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오대영의 시선을 받은 박찬수가 소리 줄여 숨을 뱉었다.

“그 빌어먹을 중국놈들.”

박찬수가 이번에는 중국인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제값을 받고 다른 중국놈들한테는 30%나 DC를 해줘? 이 개놈들.”

박찬수가 거래한 중국 철강회사를 욕하는 것이다.

“다 도둑놈들이야. 다 죽일 놈들이라고.”

오대영은 식은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박찬수와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이곳 한랜드에서 40년 만에 만났다. 그래서 자주 어울리지만 성격이 정반대다. 이곳에서 만나온 지 1년 반 동안 박찬수가 누구를 칭찬하는 꼴을 못 보았고 제대로 된 오더를 받는 것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다 남의 탓이고 나만 억울한 것이다. 그때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둘이 똑같이 두리번거리다가 곧 박찬수가 제 휴대전화를 들더니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전화를 귀에 붙였다.

“예, 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박찬수의 목소리가 대번에 나긋나긋해졌다. 그러다가 숨을 딱 멈추는 것 같더니 눈을 부릅떴다. 앞에 앉은 오대영을 노려보는 것 같았지만 초점이 멀다. 이윽고 박찬수가 비명처럼 물었다.

“전량 다입니까?”

그러더니 예, 예, 예를 반복하고 나서 전화를 귀에서 떼었다.

“무슨 일이냐?”

긴장한 오대영이 묻자 박찬수가 숨을 들이켜고 나서 말했다.

“역시 유라시아그룹이 세계 제일이야.”

박찬수의 눈동자에 초점이 잡혔다.

“내 철근 다 갖고 오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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