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현석 감독

■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연출

“美하원 위안부 결의안 채택
10년전 엄청난 성취 환기하고
여전히 변한게 없다는점 강조”

“나대지 말고, 장난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연출에 임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소재를 코미디와 드라마로 버무린 영화 ‘아이 캔 스피크’(아래 사진)의 연출자 김현석(위) 감독은 문화일보와 만나 “아픈 역사를 정공법으로 다룬 이야기였으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는 방식이 좋았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자신의 과거사를 숨긴 채 시장에서 옷 수선 일을 하며 사는 위안부 피해자인 주인공이 민원을 내던 구청의 9급 공무원에게 영어를 배우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나문희(나옥분 할머니 역)와 이제훈(박민재 역)이 주연으로 나서 억지 대사나 몸짓, 표정이 아닌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웃음을 이끌어 내며 후반부에는 60년간 쌓인 아픔을 혼자 삭여온 주인공이 자신의 상처를 세상에 드러내는 드라마로 눈시울을 적신다.

각본가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김 감독은 2002년 ‘YMCA 야구단’으로 연출 데뷔한 후 ‘광식이 동생 광태’(2005년), ‘스카우트’(2007년), ‘시라노 연애 조작단’(2010년), ‘열한시’(2013년), ‘쎄시봉’(2015년) 등 대부분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에게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된 계기를 물었다.

“제가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를 잘 안 봐요. 근데 ‘아이 캔 스피크’ 시나리오는 여러 작품을 함께한 명필름에서 줘서 읽어봤어요. 중반까지는 고만고만한 코미디가 이어지다가 70분쯤 되는 지점에서 짠한 감정이 들었어요. ‘아 이거구나’하는 생각에 연출을 맡기로 결정했죠.”

아무래도 소재가 무겁다 보니 부담이 컸다고 밝힌 그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코미디를 펼쳤던 ‘스카우트’의 경험을 되살렸다고 소개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제가 광주 사람이라 ‘스카우트’ 이야기는 풀어낼 수 있었고, 그런 경험이 의욕으로 발전했지만 ‘아이 캔 스피크’를 준비하며 자신감이 두려움으로 바뀌었어요. 소재에 대한 진실함이 중요한데 저는 나눔의 집도 처음 가봤거든요. 일부러 외면한 게 아니라 분노할 역사를 피상적으로 알아온 거죠. ‘귀향’을 만든 조정래 감독의 진실함에는 발끝도 못 따라가죠.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어요. 몰랐으니까 이해해달라는 게 아니라 모르고 살아서 죄송하다는 표현을 옥분 할머니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전했어요.”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고 김군자 할머니가 지난 2007년 미국 의회 공개 청문회에 나가 증언한 후 미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채택한 것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에는 실제로 청문회를 성사시킨 김동석 씨가 출연했다.

“자문을 하려고 만났다가 출연을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김동석 씨가 영화에 입고 나온 양복이 실제로 청문회 때 입었던 옷이에요. 김 씨를 출연시킨 이유는 10년 전에 이룬 엄청난 성취를 환기하고, 하지만 여전히 변한 게 없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예요.”

이런 장치들로 의미를 전하면서도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미의 상당 부분은 김 감독의 각색으로 완성됐다.

“시나리오 원안에는 앞부분이 많이 가벼웠어요. 그럴 경우 후반부 드라마와 분리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앞부분은 조금 눌러주고, 뒷부분은 조금 가볍게 풀었어요. 제가 평소에 자주 쓰는 ‘아재 개그’도 넣었고요. ‘서면’과 ‘생강’에 대한 이야기인데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저는 지금도 생각만 하면 웃기거든요.”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